김석진 사회부장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구성원으로 만들어진 국가답게 언론들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사마다 지지하는 정당이 각기 다르고 지지하는 후보 역시 제각각이며 사안에 따른 판단 역시 언론사마다 각각의 정당성을 바탕으로 다르게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확인이 된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권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한 언론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을 게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헐리우드 액션'의 주인공인 아폴로 안톤 오노가 거주하고 있는 시애틀의 한 유력지방신문이 21일(한국시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과를 보도하면서 '아폴로 안톤 오노는 더 이상 사이코 코리안팬들의 살해협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며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칼럼을 게재한 것.

칼럼니스트 론 저드의 이름으로 게재된 이 칼럼에서는 "오노의 동메달 획득으로 한반도 전체는 더 이상 속았다고 징징거리지 않을 것"이라며 "오노의 가장 큰 죄악은 쇼트트랙에선 항상 일어나는 일인 심판 판정에 의해 금메달을 받은 것 뿐"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안톤 오노가 정당한 경기를 펼치고도 한국팬들의 부당한 협박과 위협을 받았으며 이번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에게 금메달과 은메달을 내주고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주장이다.

몇일 뒤 500m에서 안톤 오노가 금메달을 딴것을 두고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칭찬하기도 했다.

안톤 오노를 동정하는 것이야 뭐라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민을 '광기에 사로잡힌 사이코'로 몰고 있는 이 칼럼은 '과연 이것이 세계질서를 지켜가고 있다는 미국유력 일간지의 글일까'싶을 정도로 섬뜩하기 까지 하다.

이 칼럼은 또 지난해 가을 한국에서 쇼트트랙 월드컵대회를 개최하면서 행사주최국으로써 안톤 오노를 따뜻하게 맞이한 것을 놓고도 '아폴로 안톤 오노를 존중하는 한국팬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며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했다.

주최국의 인심을 안톤 오노를 정당화하는 억지수단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정황으로 미뤄볼 때 4년 전의 소동은 소수 미치광이 네티즌들이 저지른 광기어린 행동이 아닐까 한다'고도 했다.

CNN을 비롯해 트리뷴, 뉴욕타임즈 등 대다수의 정론지들이 안현수와 이호석이 안톤 오노를 따돌리고 김동성(의 복수)을 대신해 세계정상에 올랐다는 식의 객관적 기사를 내보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아무리 지역의 스포츠스타를 옹호하고 동정하는 것이 지역민심이고 지역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지역 언론이라고는 하더라도 이같은 논조는 도를 넘어선 망발이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됐던 4년 전 김동성이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다 말고 허탈해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대한국민으로써는 2명의 한국선수들이 나란히 안톤 오노를 꺾고 금은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시원한 통쾌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번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역대 최고성적을 올렸다는 의미보다 한국민에게는 4년전의 김동성의 억울함을 안현수라는 걸출한 스타가 풀어줬던 대회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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