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도 한동안 천주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부인 민씨는 '마리아'라는 영세명까지 받아 신앙을 간직했었다.

그러다 강대국들의 침탈야욕에서 프랑스를 이용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는 등 대원군과 천주교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마침내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1866년에 발생한 병인박해.

천주교신자들이 전국에서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하고 무려 8000명이 생매장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때 궁중에서는 경사가 있어 사형집행을 주로 충청도에서 행해 졌는데 그래서 서산의 해미, 보령의 오천이 대표적인 성지로 되어 있다. 원래 충남의 내포지방은 그 박해시대에도 천주교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됐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밭에서 일을 하다가, 또는 마당에서 타작을 하다 포졸들에게 잡혀가는 신자들은 울부짖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기꺼이 형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불과 140년. 그리고 한국천주교 200년에 450만명의 신자와 함께 두명의 추기경을 갖게 됐으니 감회가 깊다.

지난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정진석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이 김수환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이다.

불교계를 비롯,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국가지도자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환영하는 것은 그의 추기경 임명이 국제적인 한국의 위상제고 뿐 아니라 정신적 가치의 추락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이 시대에 지주 역할을 할 종교지도자들이 더욱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의 경우,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 칩거하면서 수행생활을 하고 있는 법정(法頂) 스님이 법회를 열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이 시대ㆍ정신적 목마름에 대한 갈구가 아닐까?

정진석 신임 추기경은 서울공대를 다니다 신학교로 간 공학도이기도 하고 6ㆍ25때 군생활을 통해 민족의 비극을 체험한, 그래서 그의 정신세계는 편협하지 않고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나서 대화를 하면 온화한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고 유모어도 뛰어나다.

그러나 생명존중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문제에는 단호하다.

지난해 6월 인기가 하늘을 치솟던 황우석박사와 만났을 때 "(과학이)할 수 있다고 무엇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고 훈계하며 배아를 완벽한 생명의 시작으로 봐야한다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난자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를 위한 난치병 치료를 위해 1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에서 새삼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주교시절,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이스라엘의 시나이산을 등정했다고 한다. 그때 가파른 바위의 시나이산을 오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향을 두었다.

첫째는 건강한 가정, 둘째는 생명을 지키는 일, 셋째는 북한의 복음화.

천주교 신자이든 아니든 모두가 공감할 명제다. 특히 허울뿐인 종교자유를 내세우며 실제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의 복음화'는 평양교구장도 겸하고 있는 그에게 남북문제, 인권문제 등과 함께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

마음 깊이 정진석 추기경의 탄생을 경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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