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식인 고추박사 이종민 충북도고추연구소 대표가 고추재배 하우스에서 고추모 상태를 살피고 있다.

 "'신지식인에 선정됐다'는 종이 한 장 받은 죄로 대다수의 신지식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요. 신지식인에 선정된 이후 국가로부터 단 한번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기술만 노출돼 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현장에서 들려오는 신지식인들의 현실은 비관적이었다.

 농림부 신지식인에 선정된 이종민 충북도고추연구소 대표는 고추박사라는 명성과 함께 현재 고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의 대표적인 신지식인. 음성군 원남면 고추농장의 재배하우스에서 만난 이씨는 신지식인들의 어두운 현실을 털어놓았다. 이 대표는 농업분야의 신지식인은 전국에 200여 명가량으로 대다수의 신지식인 농민들이 빚에 허덕이며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신지식인에 선정된 사람들은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대단위 농사를 짓고 있어 그만큼 투자가 많이 이루어진다"며 "반복적인 투자로 인해 대다수가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다음해인 2000년 폭설피해로 고추재배시설이 폐허가 되다시피 해 보수하는 데 7억 원을 쏟아부었고, 현재까지 지속적인 투자 등으로 인해 5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이 대표는 "농업분야 신지식인 1호인 경북 칠곡의 배모씨의 경우 신지식인 제도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지요. 신지식인 선정 이전에는 홍화씨 재배 및 가공기술로 사업이 번창했으나 정보를 많은 농가와 공유하면서 공급과잉현상을 빚어 큰 타격을 입어 신지식인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배씨는 전국의 많은 농가에 기술을 보급해줘 결국 몰락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른 케이스로 신지식인 농민들의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정부에서 신지식인이라고 지정해 놓고 단 한번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보유 기술만 노출돼 결국 사업에까지 피해를 입은 것이다.

진천군의 한모씨 역시 기술정보공유로 인한 피해자. 한씨는 장미재배기술을 널리 보급했지만 자신은 정작 성공하지 못하고 종목을 양돈으로 바꿔야만 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신기술을 보유해 경쟁력을 갖춘 농민들에게 기술을 공유하라고만 했지 단 한번도 도움을 준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충주지역 역시 성공한 신지식인을 찾아보기가 극히 힘든 실정이다.

2001년 곡물부산물 등의 원료를 퇴비사에 배합, 생산원가를 낮추는 자가발효사료를 개발해 농림부 신지식인에 선정된 원모(충주시 산척면)씨는 "신지식인 제도는 정부가 대다수 국민을 상대로 벌인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했다.

원씨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신기술만 공개돼 경쟁력만 상실했으며 지금은 아예 사료생산을 중단한 상태"라며 "정부차원의 지원은커녕 '신지식인의 집'이라는 명패를 돈 주고 사라는 잡상인들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지난 99년 사과묘목의 자가 식재로 생산비를 절감하는 M9묘목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신지식인에 선정된 정모(충주시 신니면)씨는 "신지식인에 선정된 후부터 M9 묘목이 과수농가 전반에 보편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선정 당시 정부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구경한 것이 혜택의 전부"라고 꼬집었다.

기업인 역시 정부의 신지식인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증평군의 기업인 분야 신지식인인 신모씨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의 혜택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라며 "혜택은 고사하고 신기술에 대한 제안서를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신지식인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성토와 건의사항이 쏟아지지만 결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공직계통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제도가 영속될 이유가 없고 신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무원 신지식인들 역시 노력하는 만큼의 성과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2000년 공무원 분야 신지식인에 선정된 A씨는 그동안 신기술을 개발해 20건을 특허출원 중이다.

A씨는 이중 한 가지 기술을 6년에 걸쳐 연구개발을 해온 끝에 최근에 실용화에 성공했다. 실용화가 늦어진 것은 결국 자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협력업체의 자금지원으로 실용화에 성공해 매출의 5%라는 로열티가 자치단체 수익금으로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나머지 특허출원 중인 신기술들은 언제 실용화될지 모른다. 정부나 자치단체는 무신경으로 일관하고 있고 당사자만 기술개발에 애만 태우고 있는 현실이다.

A씨는 "특허출원이 됐지만 제품화 과정까지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데 결국 시간과 자금문제에 봉착한다"며 "조례제정 등 자치단체가 재정수익차원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기술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무원인 B씨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농가수익에 기여했지만 인사 불이익만 받고 있어 한직을 떠돌고 있다.

B씨는 "신지식인에 대한 우대정책이 행정자치부나 충북도 지침으로 내려왔지만 결코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며 "모임을 갖는 다른 분야의 신지식인들 역시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정보 사회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했던 신지식인 제도가 결국 제2의 피해를 초래하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나 자치단체는 이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이지 않고 희생만 강요하고 있었다.
?/엄경철·충주=김택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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