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실로 다사다난해던 을유년이 가고 병술년이 밝아왔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가 지나면, 다음 날에는 좀 더 나은 삶이 오기를 기원하고, 한 해가 저물면 새로운 해에는 뭔가 달라지고, 행운이 가득 찾아오기를 바란다.

하기야 그런 바람이라도 없다면, 이 긴 세월을 무슨 낙으로 보내겠는가.

나의 생애도 그렇게 짧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육순이 되었으니, 한 갑자를 거의 채운 셈이다. 그러고 보면, 그 동안 적지 않은 직ㆍ간접적 경험도 쌓았으며, 많은 영욕을 겪었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된 요인에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세대가 겪은 지난날의 그것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전쟁이 있었고, 가난이 있었고, 독재가 있었고, 그리고 끊임없는 투쟁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도 우리는 언젠가는 평화가, 부귀영화가, 자유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되돌아 보건대, 시대적ㆍ역사적인 흐름이 모두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이 우리 생활을 참으로 편리하고 빠르게 해 주었다. 자동차ㆍ비행기ㆍ텔레비전ㆍ 휴대전화ㆍ컴퓨터ㆍ세탁기ㆍㆍㆍ 이런 것들을 옛날에야 꿈이나 꾸었는가.

그러나 이런 물질적인 혜택도 중요하지만, 우리 세대에 심화됐던 이념의 갈등이 완화되어, 이전의 적대적이었던 국가를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 몽골, 러시아, 동구권 등도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되었으며, 학술적인 자료 수집이나 학문의 교류도 가능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북한도 제한적이기는 하나 누구나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격세지감이 있다 하겠다.

나도 지난해에 금강산에 가본 것을 일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일 중의 하나로 치부하고 있다. 거리로는 그렇게 가까운 곳인데도 '가장 먼 나라'를 다녀왔다는 것이 솔찍한 감회다.

이런 좋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정치 분야다. 독재 또는 군사정권에서 벗어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기대해 봤지만, 역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아 서로 싸우고 헐뜯고, 국민들을 담보로 혹은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들의 권력 유지에나 온 힘을 기울이는 모습은 여전하였다. 냉전은 물러갔는가 싶지만, 남ㆍ북 관계는 살얼음을 걷는 것 같고, 경제는 좋아진다고 해도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하며, 사기꾼ㆍ도둑ㆍ강도들이 벌건 대낮에도 설치고 다닌다.

집단이기주의는 팽배해져서 건듯하면 시위, 폭력이 난무한다. 세대와 세대간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보수와 혁신이라는 기치를 내건 이들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기실 내면은 자신들의 권익 보호가 먼저다.

금년을 역술인들은 "에너지가 충만해 국운 융성의 기대가 높다. 그러나 절제하지 않으면 실익은 없고, 큰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한단다. 이런 얘기는 하나마나다.

아무리 좋은 국운이라도 절제하지 않고 자기 욕심들만 채우려 한다면, 결코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정자들은, '경쟁과 적자생존'보다는 "신뢰와 협력이 인간 진화 과정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새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사학법 파동, 줄기세포 사건, 폭설' 등이 연말에 일어나 역시 일 년은 마지막까지 가봐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해마다 빌었던 것처럼 제발 금년에는 모두에게 신뢰와 협력이 충만하여, 연말까지 국민들이 편안히 잠잘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망신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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