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끄트머리에 설 때마다 아쉬움과 스산함에 몸을 떠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아무리 그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지만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맞아야 하는 이 순간 착잡함을 떨칠 수가 없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면 전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앞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울수록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일종의 사회적인 열병(熱病)인 것 같다. 그야말로 어수선한 한 해로 기록될만하다.

우선 '황우석 쓰나미'에 휩쓸린 '한국호'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한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다.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을 받던 황우석 박사가 타이타닉 호처럼 침몰하다니, 그건 난치병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무력증을 안겨주는 중대 사건이었다. 2005년 황 교수의 논문이 '고의적인 조작'으로 밝혀진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을 법하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마당에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에 대한 원천기술 보유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로 귀착될 따름이다. 혼돈상태가 지속될수록 출처불명의 설만이 난무한다. 그럴수록 한국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희대의 과학사기에 놀아난 것으로 외신에 그려진다. 그런 반면에 '황우석 죽이기'에 나선 국제적인 세력을 지목하는 음모설이 그럴 듯 하게 들린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홍역은 한국 사회가 잉태한 필연적인 산물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개발 독재시대의 성과주의에 매몰된 사회 분위기가 온존하고 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과정'의 가치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한 앞으로도 이런 사례는 속출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절차를 중시하는 것은 바로 자유나 평등 등 인류보편적인 가치가 담보되지 않는 결과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 윤리나 인권을 무시하더라도 자국이기주의만을 강조하다보면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흐르기 십상이다. 세계정치사에서 나치나 일본의 독재를 보더라도 그 몰락의 수순은 이미 정해진 이치다.

과학분야에선 더욱 그런 절차가 중시돼야 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모름지기 과학은 '진실'이라는 검증장치를 통해 활착될 수 있는 것이다. "조급한 흥행주의가 과학적 방법론을 왜곡시켰다"는 프랑스의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지의 지적이 뼈아픈 이유다. 한국과학의 신뢰는 이제 땅에 떨어졌다. 서울대 최종 조사 결과 2, 3번 줄기세포주도 환자맞춤형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황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과 '세계 최초의 복제개' 스너피까지 허위로 드러날 경우 그 충격파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국내 과학계가?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운 국면에 빠질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또 다른 한국과학자의 논문 조작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스타과학자를 만들어 놓고 제대로 관리를 못한 업보를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논문 조작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이 팽배하다. 과학의 영역에 감정이 개입하면 또 다른 부풀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그건 세계적인 줄기세포 허브 구축,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황 교수의 독보적인 과학기술을 사장시켜서는 안된다는 논리와도 상통하는 전제조건이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기엔 이르다. 어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려는 행렬이 더욱 경건해 보이는 것은 바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사악해질지라도 진리와 정의는 살아있을 테고, 인간은 어차피 그런 보편적인 공동선(共同善)을 구현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의 생명과학을 키우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한 꿈은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도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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