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미술인들의 행사가 열렸다. 대전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던 심향(深香) 박승무(朴勝武)화백의 추모 25주년을 맞아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처음으로 마련됐기 때문이다. 심향 선생은 허백련, 김은호, 노수현, 변관식, 이상범화백과 더불어 '동양화 6대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행사 내내 침통한 분위기가 흐를 수밖에 없는 대전문화의 현실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그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는 아직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해준다. 심향의 작품은 지금도 최고가에 팔린다. 반면 심향은 대전시민으로부터는 적어도 '잊혀진 인물'이다. 그를 기리는 가족은 물론 제자를 자처하는 후학들도 없다. 그런 탓인지 대전에서 심향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그 당시 교류했던 지인들과 지역미술인들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엔 워낙 힘겹다. 그건 생전에 심향이 외로움을 벗 삼아 미수(米壽)에 이르기까지 전통산수화를 지켜내기에 전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가 대흥동 자택에서 작고했을 때만해도 한국 미술계의 큰별이 떨어졌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애도하던 그런 모습은 지금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산내에 있는 그의 묘소가 허물어져가고 있지만 누구 하나 돌보는 이도 없다. 그저 그 앞엔 숭모비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의가 무색할 지경이다.

고암 이응노 선생의 미술관이 내후년 초에 대전시립미술관 동편에 건립·개관되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홍성군도 고암 생가터 일원을 중심으로 추모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사후에도 대접을 받는 행복한 예술인은 이 뿐이 아니다. 1951년 이중섭화백의 피난처였던 초가집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마련한 제주도 서귀포시의 문화행정이 돋보인다. 강원도 양구에 박수근미술관과 더불어 예술인촌이 들어선 것도 마찬가지다. 연기군이 장욱진화백의 생가터에 미술관 건립을 위해 국비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사실 역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과연 문화의 세기다. 영국의 세익스피어나 독일 괴테 같은 대문호에게도 그런 장소판촉(Place-Marketing)의 개념을 도입시켜 국가이미지를 제고시키고 있다. 요즘 각 지자체도 지역의 인적·물적 문화자원을 활용해서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 시대를 살다간 예술인들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도 문화의 명소화(名所化)를 도모하려는 문화인식이 꽃을 피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도시의 생명력은 바로 그 사회의 문화적인 폭과 깊이에 직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 벽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기상을 읽을 수 있듯이 대전의 정체성도 바로 그런 문화적인 가치를 통해 확인하고 이를 계승·발전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대전의 뿌리 찾기 운동'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대전의 경우 행정도시 배후도시로서 문화 역량이 충분한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혹여 외형적인 인프라만을 과대포장하거나 구호에 매달린 나머지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뒤늦게나마 심향 추모사업회가 구성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심향 선생의 예술관 및 위상 정립작업이 우선 급선무다. 유작전을 여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심향 미술상을 제정해서 후학들의 모범이 되는 교육적 효과도 거두었으면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술관이나 기념관 건립 문제도 검토해볼만하다. 문화 자원은 많을수록 좋다. 그런 유·무형의 문화인프라는 궁극적으로는 시민에게 수준 높은 문화향유의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모색돼야 할 과제다. 대전시와 학계 그리고 시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아쉽다. 심향 선생이 한국화 6대가라는 명성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전시민으로서는 문화적인 자긍심을 느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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