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한 논설위원

조선조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소나무 아래가지에 걸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이에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 이 소나무가 보은군 내속리면 속리산 초입에 고고히 서있는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正二品松)이다. 정이품은 지금의 장관급이다. 소나무도 임금을 알아보고 임금도 그에 걸 맞는 예우를 해준 셈이다.

그런데 수령 약 600년의 이 정이품송이 위기 일보직전이란다. 소나무재선충의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재선충(材線蟲)은 부산, 울산 경남·북을 거쳐 곧바로 충북에 상륙할 태세다. 재선충 점령지에서 바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정이품송이 나온다. 당연히 보은군은 비상이 걸렸고 문화재청은 특별방역비 3000만원을 지원하고 나섰다. 보은군은 `1공무원 1담당 마을제’까지 도입해 주변 소나무에 대한 예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속리산 소나무 숲이 재선충에 감염되면 정이품송도 무사하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표 나무인 소나무가 재선충에 초토화되고 있다. 지난 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소나무재선충은 현재 51개 시군구로 확산돼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 피해면적만 5000㏊를 이미 넘어섰다. 다행히 충청지역엔 도달하지 않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소나무재선충은 0.6∼1㎜내외의 벌레로 나무 조직 속의 양분 이동통로를 막아 고사시키는 무시무시한 외래병해충이다. 육안으로 식별이 안될 만큼 작지만 증식속도가 무척 빨라 재선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붉은 색으로 변한 고사목만 남을 뿐이다. 매개충에 대한 천적이 없을뿐더러 치료약도 아직 개발되지 않아 치사율이 100%다. 강력한 전염성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재선충이 얼마나 독종이냐면 일본과 대만이 방역을 포기했을 정도다. 일본은 홋카이도를 제외하고는 소나무가 전멸했다고 한다.

산림청은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 60만 그루를 잘라냈으나 아직도 30만 그루를 더 잘라내야 할 처지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2∼3년 내에 재선충의 북상을 막지 못하면 우리도 일본이나 대만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애국가 가사에도 나오는 `남산위에 저 소나무’를 못 볼지도 모른다.

재선충 감염으로부터 소나무를 지키는 유일한 방안은 현재선에서 확산을 저지하는 길 뿐이다. 재선충은 이동제한조치가 없을 경우 전국 어디서나 발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림청과 지자체들이 저지선을 구축하고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라고 한다. 건축자재나 관상용으로 쓰기위해 감염된 소나무를 무단으로 옮기는 게 문제다. 소나무 이동 금지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나 국도상에서 적발된 무단 이동 사례가 벌써 1000건에 달하고 있다니 국민의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소나무는 지켜야 한다. 일본이나 대만처럼 재선충과의 싸움에서 항복해선 안 된다. 본보가 `소나무를 지키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나선 것도 이런 절박감의 표현이다. 방제 작업에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 지원하고 예찰활동을 강화 한다면 제아무리 재선충이라도 못 막을 게 없다고 본다. 근본적으로는 재선충을 박멸할 수 있는 살충제와 감염된 소나무를 살려내는 치료약 개발을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다. 재선충과의 전쟁에서 지느냐 이기느냐는 지금이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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