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합종연횡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둘러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간의 적통(嫡統) 논쟁, DJ에 대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의 국민중심당 역할론이 서로 얽혀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차기 대선 역할론을 제기하더니 어제는 병문안을 이유로 DJ를 만났다. '3김+1'이라는 원로정치 구도를 놓고 수읽기에 바쁜 정치의 생태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고 생각한다"는 DJ의 말 한마디에 정치권이 술렁거린다. 열린우리당 지도부 면전에서 나온 이 말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재보선에서 잇따라 영패를 당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10%선으로 급락한 상황이어서 민주당과의 합당론에 대한 '눈치보기'로 확산되고 있다. DJ에 대한 YS의 화해 제스처까지 오버랩되면서 민주개혁세력 연대설도 나온다. 국민중심당 창당과정에서의 JP의 행보 역시 과거 DJP 연대를 상기한다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정당 지지도 40%를 얻고 있는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2007년 대선에서도 패배한다면 15년 동안이나 야당신세를 면치 못할 처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회창 전총재의 대선 역할론과 더불어 최근 출범한 뉴라이트라는 정치단체와의 연대를 적극 모색하는 것에서도 그런 위기감이 묻어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새판짜기 구도에 군침을 흘리는 형국이다. 그 내막에 있을법한 진정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 구도가 향후 정국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 하지만 큰 흐름을 본다면 현실정치 무대를 떠난 3김의 역할을 정치권 스스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표만을 의식한 수(數)의 정치에선 죽은 권력자를 살려내거나 두 번 죽이는 재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밀로셰비치의 독재도 그런 데서 정통성을 인정 받으려한 사례다. 그는 600년전 세르비아 라자르 황제의 시신을 옮겨와서 국민을 선동하더니 급기야는 코소보 전쟁까지 일으킨 장본인이다.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시저의 장례식을 집권에 활용한 것이나 스탈린이 레닌의 후광을 입은 것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정치권이 원로정치인을 정치무대에 끌어들이려는 발상은 바로 그 옛날 즐겨 동원됐던 정치선전 및 조작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국민의 솔직한 심정일 터이다. 물론 3김의 경우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환기 체제에 맞서 정치감각을 익혀왔기에 동물적인 후각에 비견될 만큼 거의 조건반사적인 탁월한 식견을 지닌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정치 9단'으로 부른다 해도 별다른 이견이 없을 정도다. 꼬일 대로 꼬인 오늘의 난국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해법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한 사회가 저력을 지닌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발전 동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그처럼 다행스런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3김 정치 역정은 민주세력이면서도 지역주의와 보스 정치를 바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에 어두운 측면도 아울러 안겨줬기 때문이다. 또 다시 지역주의 통합을 명분으로 삼고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려 든다면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을 향한 부나비의 속성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헤쳐모이기'를 위한 탐색전이 본격화 되는 구도로 읽혀진다. 지방정가는 내년 지방선거를 둘러싼 저울질이 한창이고, 중앙 정치권에도 빅뱅을 가져올만한 위력을 지닌 갖가지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그 꼭지점은 2007년 대선과 맞물려 있다. 2005년 한국의 겨울 초입은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정당간의 정책경쟁를 통한 권력창출보다는 표만을 의식한 인위적인 이합집산만을 노리는 정국이니 그럴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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