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만 신부·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장

인생의 주기를 흔히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네 계절에 비교하여 말한다. 멋진 사랑과 큰 행복을 전망하면서 인생의 발걸음을 내디디는 청년기는 꽃피는 봄을 떠오르게 하고, 성취하기 위해 힘차게 활동하는 중년기는 한창 싱그러운 여름을, 성취한 것을 나누고 베푸는 장년기는 풍요로운 결실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장식된 가을을 그리고 고독한 노년기는 눈보라와 앙상한 가지, 차가운 바람의 계절 겨울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력에서 11월은 이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고 동시에 모든 이가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 묵상하도록 권고하는 달이기도 하다.

늦가을 낙엽의 계절에 걸맞게 인생의 웰엔딩(well-ending)을 사색하면서 현재의 삶을 반성해 보도록 전례력에 배려한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예외 없이 다가오는 인간실존의 한 부분이다.

노년에 맞이하든지 불치병에 의해 갑작스럽게 겪게 되든지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는 본능적으로 부정적이며 거부적이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한 인간존재의 삶을 소멸시키는 결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원의와 관계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에 삶과 죽음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고 또한 두려워하며 망각상태에 있을 수도 없다.

죽음을 인생의 무상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성취이며 완성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할 때 인간은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죽음을 참되게 이해할 때 삶이란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비로소 삶에 성실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든지 잘 마무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인생을 잘 마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인생을 잘 마친다는 것은 적당히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 기간에 갑자기 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뜻있게 착실히 살아나가는 긴 여정의 결실일 것임에 틀림없다.

노인은 젊었을 때부터 성실히 공부하고 일하며 가정과 사회에 기여하고 삶으로써 풍요로워진 마음과 정신과 영으로 평화 기쁨, 안온, 뿌듯한 보람 중에 삶의 마지막 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헛된 일로 시간을 낭비하면서 불성실하게 살았다면 노년기에 당면하게 되는 것은 허탈감, 후회, 외로움, 좌절감일 것이다.

노년을 위해 젊어서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필요할 것이니 알뜰히 저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인병 예방을 위하여 젊어서부터 꾸준히 절도 있게 건강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경제력과 건강은 노년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을 갖추려면 소일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봉사업무, 취미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갖추어야 한다.

결국 웰엔딩은 평상시 참살이 웰빙의 결실이다. 신체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물질뿐 아니라 윤리적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 웰빙이 웰엔딩을 보장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노인에 이르는 인생의 여정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흔히 포물선일 것으로 생각된다.? 전인적으로 점점 성장하고 성숙해 극점에 이른 후엔 차차 하강상태로 위축되면서 어린이처럼 다시 미숙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 인간학에서는 그것을 수긍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 상승곡선을 이루는 것이 정상이라고 강조한다.

노년기에 신체적 조건과 기능은 비록 하강상태로 약해진다 하더라도 일생동안 닦아온 인격이 통합되면서 그의 지혜, 소망, 사랑의 덕, 평화는 더욱 충만해지며 풍요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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