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석 경제 2부장

요즘 유명 아파트단지 분양 사무실에는 청약을 하려는 사람들로 봇물을 이루거나 줄지어 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실제 살고 싶은 집을 구하기보다는 돈을 구하기 위해 몰려온 것으로 보인다. 당첨만 되면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계산속에 찾아온 것이다. 소위 부동산 투기세력 이라고 치부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누구도 '투기'라 말하는 이는 없다. 단지 '투자'라고 말할 뿐이다.

투기와 투자는 경제 석학이 하루 종일 설명해도 그 의미와 경계가 모호 하다고 한다. 여기서 투기와 투자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잘못 흐르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꼬여도 한참 잘못 꼬여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IMF때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간신히 그 위기를 넘기는 듯 했으나 여전히 경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한때 반짝하던 경기는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 버렸다. 현 정부 들어서도 경제 살리기를 부르짖고 있지만 불황의 끝자락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해마다 연초만 되면 온갖 통계지표를 들먹이며 "올해는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며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 보였지만 결국 그것이 신기루로 끝나고 만 것이 벌써 3년째다.

각종 언론 보도에서 장기 경기침체, 장기 불황이란 수식어가 언제부턴가 감초처럼 오르내리고 있다. 게다가 국제유가까지 급등하며 '물가상승-내수부진-투자위축-실업자 증가-소득감소'라는 악순환의 질곡은 깊어 가고 있다. 우리 경제가 그야말로 언제 끝날지 모를 내우외환에 처해 있다.

중소기업인도 자영업자도 "지금같이 어려운 때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문만 열어 놓은 채 개점휴업 중인 영세상도 부지기수다. 거리엔 한창 일할 청·장년들이 일거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직장 잃은 가장이나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목숨까지 버리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일부 대기업이나 가진자들은 사상유례없는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몇몇 재벌들은 갈수록 순이익이 급증하고 졸부들의 '돈잔치'는 아직도 곳곳서 계속 되고 있다. 못가진자의 한숨 소리와 가진자의 즐거운 비명이 뒤섞여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불투명 하고 흐트러진 경제구조에서는 합리적인 투자처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누구도 아파트 분양에 몰린 그들을 '투기'라고 손가락질 할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뒤틀리고 왜곡된 배경에는 선출직 위정자들의 '인기영합'에 큰 책임이 있다. 경제정책을 경제논리 보다는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에 따라 공약남발·어거지 개발 등 각종 무리수를 둬왔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경제정책이 누더기가 되고 일관성이 결여된 채 이리저리 휘둘리게 됐다. 또 근본적인 치유책을 내놓기보다 '우선 곶감이 달다'고 즉흥적인 대증요법으로 직면한 위기만 모면하다 보니 경제는 더 꼬이고 말았다.

이런 경제 난세 일수록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어떤 정당의 당리당략이나 어느 파벌의 정략에도 흔들림이 없이 '경제를 오직 경제논리로 풀어가는 지도자'일 것이다. 그런 지도자만이 현재의 수렁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훗날을 기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뽑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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