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현 대전시 여성청책위 연구위원

'인간의 존엄성 실현'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다. 현재 여성 관련 분야에서 일반적인 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양성평등'(gender equality) 역시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존엄성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접하는 시민들에게 그 의미는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견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첫째, 본래 인간에 대한 평등이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넘어 인간으로서 바라볼 때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만을 고려해서 추진해 온 그간의 평등정책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둘째, 그동안 여성정책 및 여성운동의 활발한 전개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충분히 향상된 만큼 여성만을 위한 정책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양성평등이 '모든 인간은 고정된 성역할이나 성별 고정관념에 구속됨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으로 정의된다고 할 때, 위의 두 가지 입장은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배치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먼저 위의 두 가지 의견은 모두 평등의 초기 개념인 '기회의 평등'을 주장한다. 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남녀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주어진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 여부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컨대 남성과 동등하게 취업을 하더라도 자녀 양육을 비롯한 가정 내 역할이 여전히 여성의 역할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수준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음으로 위의 두 가지 견해는 남녀간에는 생물학적 차이 외에 어떠한 차이도 없는 것으로 주장한다. 따라서 일정한 수준에서의 사회적 지원 외에 여성정책의 추진은 오히려 남성들에게 차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초기에는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서는 남녀간의 어떠한 차이(생물학적 차이를 포함해서)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표적인 예로 모성의 가치를 들 수 있다. 그간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모성이 여성적 특성이고 이것이 여성 차별에 악용된다는 이유로 모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꺼려 왔다. 그러나 현재 모성의 가치는 남녀를 떠나 인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인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남녀간 차이를 사회적으로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가치를 부여했던 평가과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고 이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을 편견없이 수용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질적인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평등뿐만 아니라 남녀의 '다름'을 포용하는 '형평'(gender equity)의 추구가 필요하다. 이는 '서로 다른 여건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다르게 취급'한다는 원칙으로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정하고, 이들을 달리 대우함으로써 남녀 모두를 좀 더 동등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남녀의 다른 상황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러한 차이를 영구히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정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녀의 역할을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회가 그 부담을 나눠 가짐으로써 남녀 모두 능력과 여건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토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추구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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