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소슬한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다. 머지않으면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에 순응해야 하는 게 우리의 소박한 삶이다. 어김없이 '순환' 법칙을 이어가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그렇게 그려진다. 거기에선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구분 의미가 별반 소용이 없다. 인간은 이를 선용(善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탓이다.

하지만 자연의 순환법칙에 비하면 인간사가 만들어낸 규칙은 어줍지 않기 그지없다.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가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외면함으로써 많은 갈등을 양산해내고 있다. 정치나 제도가 그렇고 인간 역시 눈앞의 이기주의에 빠진 나머지 대의(大義)를 외면하기 일쑤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행정도시를 둘러싼 위헌논란이다. 행정도시에 대한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뉜 민심을 보면 21세기에 투영된 한국의 총체적인 '악순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한 위헌 여부가 늦어도 다음달 초엔 결정될 전망이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돈다.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결코 안심만은 할 수 없다. 꼭 1년 전처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격이어서는 안된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성향 및 기류를 볼 때 더 이상 악순환 구조를 구경만 할 수는 없다는 절박감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드러났던 엄청난 후유증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가공할만한 권능을 가진 것으로 입증된 마당이다. 성문헌법국가군(群)으로 분류돼온 한국이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원용해서 불문헌법 및 관습헌법 법리를 적용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앞으로 그럴 리야 없어야겠지만 이른바 '국민정서법'이란 취지를 들먹일 수도 있다. 수도권의 외침만이 국민 정서로 인식하는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결국 지방민의 정서는 국민합의를 외면하는 요인으로 치부하는 데 바탕을 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합의된 국민정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국민투표론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민정서법 논란에 대한 법조계 입장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비쳐진다. 국민정서란 변덕이 심한데다 포퓰리즘에 친숙한 편이어서 죄형법정주의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흔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헌재가 국민합의 운운하면서 헌법에도 없는 법리를 만드는 이율배반적인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 대전청사나 과천청사를 옮길 그 당시에도 국민투표를 했어야 했다는 논리 아래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럴 경우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행정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이 행정수도 건설법에 이어 잇따라 무산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 정치권에 주는 타격이 너무 크다. 삼권분립이라는 기본 이념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헌재는 국회의 입법기능이나 대통령의 국정일체를 통제하는 원로원의 기능을 떠맡게 될 것이다.

지방민이 겪게 될 혼란은 또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작년 위헌 결정 이후 연기 공주지역민들의 패닉 상태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찔할 따름이다. 필자는 행정수도 무산 이후 꽃상여와 트랙터를 앞세우고 가두행진을 벌이면서 절규하는 원주민들의 모습 속에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그려진 유랑민을 떠올린 바 있다. 그건 국정 절차에 순응하고 있는 국민에게 뒷통수를 치면서 더 잘하라는 형국과 뭐가 다른가. 행정수도 대신 행정도시를 세워주겠다던 약속이 물거품이 되는 극한 상황은 아예 상상하기 조차 싫다.?

'분노의 포도'처럼 배신감과 분노만 깊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이제 끊어야 한다. 행정도시를 비롯해 기업도시,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 등 일련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토록 중앙과 지방이 상생하면서 오순도순 살수 없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국가다. 지역, 이념, 계층간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서로를 보듬는 상생의 선순환 세상이 그래서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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