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규 천안시민포럼 공동대표 / 정치학 박사

현재 한국사회의 변화는 국가와 사회 각 부문간의 권위와 지배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 구조적이며 양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우리들이 익숙해 왔던 문화규범과 사회제도의 관행에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혁기, 즉 낡은 체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던 질서원리가 새로운 것들로 변하고 교체되는 과도기적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87년 6월 항쟁으로 종래의 권위주의적 통치구조가 물러가고 새로운 헌법과 선거에 의한 정권이 탄생하였으나, 아직까지 민주정치에 필요한 개혁과 발전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으로도 선 성장, 후분배의 국가개발철학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구조에 목말라하는 계층으로부터 광범한 동의를 얻고 있으며, 정책순위의 재조정과 새로운 국가발전목표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관계 또한 탈냉전, 탈이데올로기의 새로운 질서로 접어들고 있으며,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정립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Weber가 지적하듯이 변혁기의 일시적, 과도적 성격이 안정되고 제도화된 모순으로 대체되기 위해서는, 현 한국사회의 이행기적 증상에 대한 진단과 이에 기초한 발전전략의 모색이 필요하다.

우리사회 혼란의 근원적인 원인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 즉 인간의 내면적인 도덕성인 인(仁)의 회복만이 있을 뿐이다. 성선설의 논리에서 보면 인간은 누구나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착한 본성(仁)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존재라고 談論 할 수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준 천작(天爵·벼슬)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즉, 남을 사랑하여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서로 양보하고 공경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이런 연후에 인작(人爵·인간이 준 벼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로서, 의는 인의 실천에서 준거할 덕이며, 유교사상은 이로부터 도덕사상으로서의 준엄성을 가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한국의 리더들은 조직원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요구하고, 충성치 않으면 가차 없이 정리해 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야말로 정말 기가막힌 왜곡이다. 충성은 요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어야 한다. 충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보상체계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릇된 인성을 지닌 리더에 의한 것이요, 그런 리더는 분명 민주적 리더는 아니다. 도태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 스스로 덕치의 논리와 인정의 논리를 한없이 추구하고 발전시키면, 주변의 인적 자원이 풍부해진다 할 것이다.

한국의 현실정치는 혼돈, 그 자체다. 과거의 권위주의 의식 속에서 새로운 개혁적인 논리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토대를 인정치 않으려는 기득권의 횡포가 지배적이다.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어떤 사안이든 무관심하고 있다.

정치판에는 국민이 없고, 정치꾼들만 존재한다. 그러니 정치를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 한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민이 참을 수 있을까? 분노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강제된 법률과 형벌보다 도덕과 예의로 백성을 교화하는 정치사상이 있어야 한다. 첫째, 목민관(牧民官)이 군자다운 인격을 닦아 다스려야 한다(修己以安人) 둘째, 통치자는 재화의 적음보다 분배가 균등하지 못한 점을 걱정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이는 사회혼란과 民들의 정신(精神)에 심한 균열이 생길 것이다.

이제 군자다운 지도자,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진정한 예(禮)를 회복시키는 지도자,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을 바탕으로 예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필요 할 때다.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양생해야한다. 그런 연후에 대동(大同) 사회, 인과 예를 통해 도덕성을 확립하고 질서 속에서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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