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대전시립미술관장

우리는 정보가 권력이 되고, 능력이 되고, 또 자원이 되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나타나는 미술문화의 주류는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던 종래의 시각중심 미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각은 물론, 청각, 후각, 촉각을 모두 자극하는 테크놀로지 미술의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미술은 이제 눈만을 즐겁게 해 주었던 의무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회를 통합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위에 세워진다. 이러한 과학기술 혁명과 정보기술의 혁명을 토대로 일어나는 시각문화의 변화는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전시장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관람객이 만져야만 작품으로서 가능한 경우 또는 관람객이 작품에 무엇인가를 그려야 완성이 되는 것 등 예술작품과 관람객간의 상호 작용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제5회 광주국제비엔날레가 작품제작 과정에 작가와 함께 관람객도 직접 참여시키는 '관객참여' 방식을 도입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 때문으로 보인다.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소비자와 교감하고 소비되는 예술로 변모되면서 미술관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관람객이 찾아주기만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일방통행 전시는 이제 의미를 상실했으며, 쌍방향 전시를 통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만이 이 시대를 살아갈 유일한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듯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미술의 소통방식도 달라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관람객의 참여를 핑계로 미술의 본래 의미를 상실하거나 얄팍한 흥행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수동적 감상자로서의 관람객에서 능동적인 참여자로의 역할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문화적 변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정책과제 2007-17)에 따르면, 21세기 박물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유물에서 체험으로, 보존중심에서 교육중심으로, 계몽에서 학습과 놀이를 병행하는 에듀테인먼트(교육의 edu와 오락의 entertainment 합성어)로의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공급자중심에서 이용자중심으로, 국가중심에서 지역중심으로, 표준화에서 특성화로의 이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결합으로, 관료주의에서 경영합리화로의 전환이 절실하며, 기존의 학예원 중심에서 이제는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한 박물관 운영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

'기억의 축적'이라는 기능만으로 미물관이 버티던 시대는 지나갔다. 미술관은 더 이상 소장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관리하는 역사의 창고가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으며, 따라서 교육, 정보화, 출판, 공연, 홍보 등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미술관 직원들은 다양한 전시 기획 능력을 겸비해야 하며 장기적인 문화경향을 예측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미술사학·비평론의 연구를 통해 미술계의 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작가와 관객을 역동적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하며, 관객의 취향과 문제의식을 파악하는 업무수행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전시실 벽에 작품을 걸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는 공간과 시간을 주제로 하는 미디어 아트, 개념미술, 행위미술, 시간미술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미술이 다양해졌다. 또한 원본그림만 갖고 있으면 되던 시대에서 복제품이나 무형의 예술품까지 수용해야하는 현실로의 이행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미술은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장 쉽게, 가장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이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환경의 표피적인 수용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나타나는 미디어 표현방법의 복잡성과 그러한 사회적 조건 하에서의 매스미디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적·정치적 파워와 미디어와의 역학관계에서부터 미디어의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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