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칼바람에 살얼음 직장생활 - 가정선 무능력한 아버지 따돌림

지난 7일 낮 12시, 대전시 중구 대사동 보문산 야외음악당과 전망대 주변에서 가을햇살을 받으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정장차림의 중년 남성 10여명이 눈길을 끌었다.

모기업 대전지사에서 중견간부로 근무하는 최모(51)씨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이 곳에서 빵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 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최씨는 담배 한모금을 길게 내뿜으면서 "회사에서는 후배에게 밀려나고 가정적으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돈은 많이 들어가고 아내마저도 무능한 남편으로 취급하기 일쑤"라며 "더 이상 설 곳도, 설 힘도 없다"고 한탄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직장에서 남다른 열정을 갖고 매사에 진취적으로 일을 해왔던 최씨.

그는 승진심사에서 2년 연속 낙마한 후 업무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상실했다.

25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한 때는 잘나가는 직원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지만,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외국어와 PC업무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추월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

그는 가정에서조차 부인과 아이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자동차 판매영업을 하는 김모(45)씨도 젊었을 때는 세일즈왕으로 명성을 날릴 만큼 열정적이었으나 40대를 넘어서면서 판매실적 부진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김씨는 최근 경제불황의 탓도 있지만, 몇 년전 교통사고로 다리와 허리를 다친 후 일할 의욕을 상실한 데다, 자동차 판매시장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영업에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김씨는 당장이라도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싶지만 아직은 아이들이 초·중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만둘 수도 없는 실정이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

이는 단편적인 사례지만 직장과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상실해가는 40·50대 중년남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산업역군으로 우리사회를 지탱해왔던 중년 남성들, 지난 97년 IMF 당시 감원과 명예퇴직 등의 회오리바람에 이어 또 다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는 "남성들이 승진에서 밀리거나 좌천 되었을 때와 가정에서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을 때 만큼 큰 좌절감과 체면이 손상되는 일은 없다"며 "한창 일할 나이에 무기력감과 회의감을 느낀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고 진단했다.

이 전문의는 또 "오직 일하는 재미로만 살아 온 중년 남성들의 불안감은 우리 사회와 산업화에도 큰 장애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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