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이용시설에 마련된 비상구를 그대로 믿었다간 오히려 '황천(黃泉)길'을 재촉하게 될 것 같다.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비상구를 열고 나가면 곧장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건물이 대전·충남·북에서만 400개소에 이르고 있다는 보도다. 비상구를 이용하다가 추락사한 사고가 지난 3월 울산에 이어 9월 경북 안동에서 각각 발생했지만 이를 예방할 만한 사회적인 노력은 아직도 실종상태다.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런 데서부터 싹트는 게 아닌가.

안전 불감증은 이제 도를 넘어 일상화된 느낌이다. 지난 5월말 현재 전국의 낭떠러지 비상구는 1079개소로 이중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충청권에 몰려 있다니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의 방심이 어느 수준인가를 가늠케 해준다. 비상구는 화재 및 비상사태에 대비한 인명 구조 시설이다. 비상구 밖에는 비상계단이나 발코니, 안전로프를 설치해야만 탈출 용도로 제 구실을 하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법한 일이다. 법제화하기 이전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사회적인 규범이랄 수 있다. 비상시 인명을 구출하는 장비 및 시설에 대한 투자에 인색한 건물주의 인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눈가리고 아웅하는'데서 사고는 일어나게 돼 있다. 무엇보다도 관련법에 구멍이 많다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초 관련법에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비상구 설치의무만 규정해 놓은 탓이다. 부대시설도 아울러 설치토록 하는 규정을 뒤늦게 보완한 당국의 안이함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그렇지 않아도? 당국의 소방 점검을 의식한 갖가지 속임수가 성행하고 있다. 실정법이 있어도 이를 위반하는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그렇다면 사회안전을 위한 특단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 기껏해야 느슨한 행정지도로 대처할 처지가 아니다. 건물주의 양심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겪게 될 피해자의 입장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사고가 난 후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소비자에겐 건물주의 안전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 볼 권리가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사고 위험성이 큰 건물에 대해선 공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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