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간의 외교적·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반도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우리 안보의 근간을 이루는 한미동맹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도 주한미군 철수 또는 후방배치 등을 거론하고 있고, 군사적 옵션(military option) 운운하면서 강력한 대응조치를 내비쳤다. 반면에 미국 내에서는 북한 핵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되, 북한이 테러국가에 공급하는 핵무기 판매 루트를 강력하게 단속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간에 우리 정부는 설마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겠느냐는 식으로 해석하거나,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군사공격과 같은 중대 사안은 사전통보를 해 줘야 한다는 식으로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과 미국의 눈치만 살피는 것 같아 답답하던 중에, 고 건(高 建) 총리가 제시한 '미군의 전쟁억지력 저하 반대', '인계철선(trip wire) 유지', '북핵문제 처리 후 기지 재배치 논의' 등 '3원칙'은 평가할 만하다. 한반도 평화는 한미동맹 체제에 의해 지탱돼 왔다. 동맹체제의 흔들림은 당연히 긴장을 유발하고 새로운 체제 형성 또는 유대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는 한미관계는 물론 대북관계의 구도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나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경에서 북한 인사와 만났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비밀외교 또는 비공개 외교가 필요하지만, 일정한 기간까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져야만 비밀외교의 진가가 나타난다. 얼마 안돼 공개되는 것은 외교의 미숙함과 국익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 비밀송금건으로 특검제까지 도입되는 처지에, 어설픈 대북접촉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가뜩이나 긴장이 고무되는 시점에서 이런 식의 접촉이 필요했는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접촉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시된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의 회오리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 정찰기에 15m까지 접근했다는 북한의 미그-29기의 도발적 행동을 냉정하게 다뤄야 한다. 평화유지는 굳건한 대응의지에서 나온다. 한반도 긴장 고조의 주원인은 북한 핵이지, 한미동맹체제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아니다.

그러나 한미간의 불협화음과 대북인식의 차이가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눈치만 보다가는 한반도 평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태도는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엄연한 현실과 국익 중시만 있을 뿐이다. 정부의 한반도 안보환경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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