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리 농촌은 언제나 얻어맞고만 사는 객체적인 존재로만 머물러야하나. 진흙탕 싸움만을 반복하는 정치권에 이를 해결해주도록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제야말로 무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농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쿠즈네츠 교수는 "농업의 발전 없이 선진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촌개발이 안 된다면 중진국까지의 공업화 도약은 가능하지만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의 실증적 분석은 시대를 막론하고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 기반산업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 농촌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자식을 가르칠 수도 없는 곳으로 비쳐진다. 점차 희망이 없는, 마치 저주 받는 곳과 같이 버려진 곳이 되어가고 있다. 빈집이 수두룩하고 그나마 노인들만이 농촌을 지키고 있다. 마을마다 어린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그래서 학교는 텅텅 비어 있다. 너도나도 도시로 향한다. 농촌출신을 마치 아프리카 후진국 사람인양 취급하는 사회적 구조 또한 이를 부추기고 있다. 이게 바로 이 시대 농촌의 처절한 현실이다.

그 동안 이 나라를 다스려온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이들은 오히려 농촌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기피하려 한다. 농촌의 황폐화는 근대화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노력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봉책으로 그때그때를 넘기기 일쑤다. 선거가 있을 때나 선심성 공약을 불쑥 내놓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선진국을 지향함에 있어 최대의 걸림돌이 농촌황폐화라는 사실을 먼저 직시하는 게 순서다.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처럼 공업발전이 없는 선진국은 많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도시발전이 없는 선진국도 많다. 사는 것도 그렇고 자녀교육도 그러하듯 우리나라처럼 농촌이 피폐된 선진국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

알프스의 산자락을 끼고 있는 스위스를 보더라도 접근하기 힘든 오지와 고도 2000m나 되는 산간 지역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좁은 국토를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해주는 정책적 배려가 부러울 따름이다. 정부에서는 몇 집 살지도 않는 산꼭대기까지 도로를 만들고 경사가 아주 심하면 케이블카나 톱니열차를 설치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해주고 있다.

도시민들에게 '휴식'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린투어리즘(green tourism)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농촌은 그야말로 천혜의 관광 상품이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황토 흙담집에 머물며 신선한 아침 공기와 그윽한 땅 내음을 맡으며 감자나 고구마도 캐고 맑은 개울에 발 담그고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며 마을 사람들과 밥상을 마주 하고 구수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관광 상품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농촌의 생활과 농사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주 5일 근무제로 여가가 늘어나면서 '농촌'이라는 실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가치 있는 관광 상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역군인 우리 농민들이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지구환경의 지킴이, 전통문화의 수호자, 균형 있는 지역발전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정부는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권은 끝없는 정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농촌에 대한 실상부터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농민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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