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 건양대병원 진료부장

'전동차는 달리는 불쏘시개', '엄마, 오빠, 사랑해' 등은 지난주 내내 방송과 신문 지면을 장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 보도내용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수많은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들이 잊혀질 만하면 터지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이번 대구 참사도 왜 불길 속으로 전동차가 들어 왔는지, 기관사는 왜 마스콘 키를 가지고 달아났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새 대통령이 들어선 요즈음 가장 흔히 접하는 말은 '개혁'이다. 개혁의 의미는 '제도, 관습, 기구 따위를 모두 새롭게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모든 것이 잘못돼 있어서 모두 바꿔야 하는가.

현재 우리 나라는 사회 곳곳이 부실덩어리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서 그렇지 앞으로 얼마나 자주, 얼마나 큰 사고가, 어디에서 터질지 알 수가 없다. 종종 발생하는 급식 식중독 사고도 평소에 별일 없이 지나가서 그렇지 유통기간 준수, 조리원칙을 지키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한 언제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지하철 참사도 내장재를 불연재로 해야 하는 당연한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외국에서는 불연재를 사용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나? 이것은 범죄행위로 취급돼야 한다.

따라서 개혁의 뜻은 바꾸는 것보다 모든 것을 원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다. 무엇인가 바꾸려 하는 것보다 정해진 원칙을 지키도록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의 건강에도 정도가 있을 수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보신문화도 원칙을 벗어난 건강지키기일 뿐이다. 평소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규칙적인 운동, 식사, 적당한 술, 금연' 등 건강을 위한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 끝장을 내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한다.

그러다가 건강은 서서히 망가지고 어느 날인가는 큰 병이 찾아온다. 이제 내가 평소에 지켜야 할 일은 없는지, 원칙을 깨는 일은 없는지, 나 혼자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철저히 되돌아볼 때다.

우리는 5000년에 가까운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원칙만 지키면 운동, 기술, 문화 등 어느 분야든지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런 민족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다. 이제 원칙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며 자화자찬하고 흥청망청하다 IMF외환위기를 맞아 큰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우리의 자만을 자제토록 하는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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