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비하하는 오 장관님은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치셨더군요. 근데 의원님은 '고령으로 군면제', 내 참 어이가 없수다."

"나라 운영 잘하라고 국회의원 뽑아주면 뭘 하나. 장애인은 국민 아니냐. 못난 사람도 돕고 좋은 일하라고 뽑아준 건데. 자기들 뱃속만 불릴 줄 알지."

이상배 한나라당 의원이 국감장에서 오거돈 해양수산부장관의 선천성 말더듬증을 조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인터넷을 연일 후끈 달구고 있다. 오 장관이 답변 도중에? "그-그-그 당시…"라면서 말을 더듬자 이 의원은 "중국-중국-중국한테는 서해어장 다 내주고… 거 저-저-저 모택동을 존경해서 그렇습니까, 왜 그래."라고 오 장관의 말투를 흉내내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당신'이라며 오 장관을 반말로 몰아붙이기 까지 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국감장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는 게 문제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은연중에 특정인의 장애를 비웃는 데 가담한 공범처럼 비쳐진다. 결국 이 의원은? 그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이번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오해를 풀고 이해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그 후유증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국감 중에 피감기관장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달아오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우리사회가 말아톤의 배형진이나 수영의 김진호에 감동했던 데서도 확인했듯이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소외 지대에 방치된 장애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에 대한 사회온정이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이를 비하하는 행태에 대해 분노하는 네티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오 장관이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보낸 글이 이번에 뒤늦게 알려진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제가 바로 장애인"이라는 고백도 그렇고 말더듬이도 장관을 할 수 있다는 데 용기를 얻었다는 어느 여대생의 말을 소개한 대목이 잔잔한 물결로 다가온다. 실제로 그는 말더듬증을 교정하기 위해 배운 노래 실력이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같은 사례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드러난 말 역시 인식이나 행위의 한 편린이라는 점에서 그 양면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소통의 미학,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회 법사위 의원들이 국감을 마친 후 피감기관들과 걸쭉하게 뒷풀이 술판을 벌이는 과정에서 성희롱 폭언으로 구설수에 휘말린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국회의원이나 검사나 그 책임의 정도를 보자면 별로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상대 탓만을 하는 모습이 가소로울 뿐이다.

막말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이로 인해 상처를 받는 계층이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말로 정책을 펼치는 정치인이라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는 불문가지다. 말을 잘하기로 입증된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특히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일수록 말이 지닌 양면성은 그 위력이 대단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현상도 바로 그런데서 나온 것이다. 사회의 역동성을 살려주는 데 있어서는 사회 구성원간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소모적인 갈등만을 양산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성적인 설득은 외면하고 자만과 아집에 빠진 감정사회는 수평사회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갈등을 풀어가려는 문화가 아쉽다.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는 천수경(千手經)의 첫 구절이 바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거짓말, 사탕발림식 아첨, 이간질, 험담이야 말로 당사자의 입을 더럽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약성서에서도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 매인다'고 가르친다. 말처럼 무서운 무기는 없다. 세치 혀끝에서 쏟아지는 그 말을 선용(善用)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에게 그 화가 되돌아가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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