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수 대전시 자치행정국장

존경하는 선배님!

오랜만에 뵙는 저의 모습이 초라한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지난 30여년 넘는 공직기간 중 올 여름 같이 지리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말복이 지나는 8월 하순부터 불거진 우리시 공무원의 비리와 관련된 기사로 더더욱 길고 무더웠던 때문이지요.

엊그제가 추석이어서 시골 선영을 찾아 성묘를 하고, 고향 어른들을 뵈올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한결같이 "어찌된 일이냐?", "너는 괜찮느냐?", "어떤 일이기에 뉴스 시간마다 나오느냐?"는 물음 뿐이어서 낯을 들 수가 없었답니다.

선배님!

선배님께서는 후배들에게 '작은 것일망정 부정스러운 짓을 하지 않도록 제 스스로 경계하기를 힘쓰라'고, 또 '사무관 이상쯤 되면서부터는 자기 돈을 쓰면서 살아야 한다'고 관리직 공직자의 처세기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꽤 오래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댁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수박 한덩이를 들고 간 저에게 "젊은 사람이 이런짓부터 배웠느냐?"고 호통치시던 일 말입니다.

선배님!

연이은 비위내용의 보도가 계속되면서 저희는 침통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일부 직원들이 저지른 비위라 하지만, 어찌 그들에게만 잘못이 있다 하겠습니까?

관리자로서 제 일을 다하지 못해 온 탓이고 후배들을 바르게 향도하지 못한 소치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을 향한 '참봉사자'로 거듭나기 위해 제도적인 틀을 더욱 견고하게 마련하는데 적극 참여하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도 감수해 나갈 것입니다.

선배님께서 간부들에게 식사대접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너무 딱딱하다, 인간미가 없다'는 지적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들으시고, '저녁을 과장한테 대접받고 나면 이튿날 계산서가 과서무에게 넘어가고 과 전체직원의 부담으로 할당되어 결국은 과전체직원에게 저녁을 얻어 먹은 꼴이 되니, 차라리 판공비가 있는 내가 사는게 옳다'고 하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저희들은 과장이 윗분의 식사를 모시는 경우 과에서 부담하는게 너무도 당연하였기에 오히려 의아해 했습니다만, 해가 흐르고 옆에서 모시면서 또 선배님의 하시는 모습을 익히면서 우리 후배들의 귀감이 되시기에 훌륭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글을 쓰는 후배의 생각은 더더욱 송구스럽고 참담하기만 합니다.

어찌 저희가 선배님의 행적을 그대로 닮아 옮길 수 있겠습니까마는 본받으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좀 더 절실하였더라면 올해 여름에서 초가을로 이어지는 더위가 이렇게 길고 무덥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하며 후회해 봅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어언 더위가 가고 결실의 가을입니다.

지난 더위가 저희들에게 견디기 힘드는 고통과 큰 교훈을 준 것으로 받아 들입니다.

이제 저희들은 충청도의 대쪽 선비정신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 이웃에 넉넉하시어 이시대 올곧은 지방행정인의 표상이신 선배님을 닮아 새로운 공직문화를 열어가는 성실한 머슴이 되도록 진력 할 것입니다.

한달여 긴 기간 보아 오신 저희의 치부는 감출 수 없겠습니다만, 그 치부가 빨리 치유돼 더욱 튼튼한 봉사조직으로 거듭나도록 뼈를 깎는 아픔을 참으며 개과천선에 정진 할 것입니다.

더욱 좋은 가르침 주시고, 지켜봐 주시고 꾸짖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내 강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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