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권 논설위원

신학기를 앞둔 필자의 심경은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말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방학기간 동안에 잘 아는 동료교수 몇 분이 서울권 대학으로 또 옮겨간 것이 그 한 이유이고, 지방분권과 지방대 육성을 표방한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것이 또 하나의 이유다.

물론 지방대의 현실을 생각하면 서글프기 짝이 없고 교수들이 서울의 대학으로 전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1970년대만 해도 전국 대학 랭킹 중 상위권을 차지하던 지방국립대들이 이제는 모두가 시골대학이 돼 버렸다. 수도권 대학 출신이 주요 대기업 인력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0~85%, 사시합격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2.6%, 행정·외무·기술고시 합격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2.1%에 이르고 있다. 또 수능시험 상위 5% 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62.5%로 수도권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반면 지방대는 지역 출신 우수고교생의 진학률 감소 → 지방대 대학원 진학률 감소 → 취업률 및 대학연구능력 저하 → 지방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산 → 우수 고교생의 지방대 회피라는 악순환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는 '연구중심대학-교육중심대학'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두뇌한국(BK) 21' 정책이 일조했는 바, 김대중 정부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이 사업을 시작한 뒤 일부 남아 있던 우수인력마저 장학금과 생활비를 제공하는 서울 소재의 대학원으로 가 버렸다. 지금은 교수가 연구를 하고 싶어도 도와줄 대학원생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전에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주제의 지방순회 국정토론회를 가지면서 수도권에 집중된 '사람과 돈과 권한'의 지방분산, 지방대학과 언론 육성 및 이 두 기관을 중심으로 한 발전 비전과 과제 개발, 문화강국 육성 차원에서의 문화분권, 지방발전사업에 대한 경쟁을 통한 선택과 지원 등의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지방대학을 지역발전과 비전을 창출하는 중심기지로 육성할 것인 바, 각 지자체가 대학을 중심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해 중앙정부에 올리면 정부가 이를 평가해 비전 있는 사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지방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대학 투자는 지방에 집중적으로,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방에만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아마도 프랑스에서 성공적으로 집행된 '계획계약제'와 '국토 및 지역개발기획단'(DATAR)을 염두에 둔 정책방향으로 보여진다. 계획계약제는 지방정부가 자체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중앙정부와 계약하는 제도다. 일단 계약서에 서명하면 중앙정부는 그 내용대로 자금 및 행정 지원을 해야 한다. 또 총리 직속인 DATAR는 지방정부와 경제개발계획을 계약하거나 지역 균형발전정책을 입안·추진한다. 그 구성원은 중앙정부 공무원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정책방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지역 격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참모진들이 포진해 있는 데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지방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지방 분권이 이슈화됐고, 여기에 시민단체도 가세한 것이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된다. 물론 혹자들은 이에 대해서 특히 '지방대학 발전'이라는 과제가 지역민들과 지방대학 교수들의 이기적인 억지에 불과하다고 냉소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도권에의 자원 몰아주기가 없을 때를 고려하면 수도권은 이미 집적의 불경제가 집적의 경제를 한참 초과하고 있고, 지방은 지나치게 과소한 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지방대 육성을 통한 지방 살리기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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