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지사공관은 어떤곳?

<속보>=충남도지사 공관은 일본과 미국 등 어두웠던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상흔을 간직한 역사속 건물이다.

일제 치하에서는 충청도 수탈에 나선 일본 고위관료의 관사로 사용됐고, 해방 후 6·25전쟁때는 잠시나마 제2의 청와대로 활용되며 오욕(汚辱)과 영광을 함께했다.

193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이나 타 시·도에서 임지받은 고위관료들을 위해 건립한 이 곳은 지사공관 외에 국장관사들이 도열, 전국 유일의 '관사촌'을 이뤘다.

특히 30, 40년대 이 곳 관사촌에서는 극심한 충청도 수탈의 총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사공관 건축 양식은 외지에 나온 일본인들의 편의를 감안, 일부 한국식, 서양식을 가미한 전형적인 일본가옥으로 설계됐다.

2층 공관은 일본식인 연와조에 적벽돌 치장쌓기를 했으며, 다다미방에 일본식 창호지 미닫이 문을 다는 등 건물 대부분이 일본 고유의 건축양식을 취해 고향(?)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었다.

해방 후 지사공관은 화려한 외관과 최적의 거주환경에 다시 한국관료의 관사로 사용되며 현재의 명맥을 잇는다.

도지사 공관은 6·25전쟁 발발과 함께 당시 신흥강국인 미국과 연을 맺는다.전쟁 발발 후 피난길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은 이 곳 공관을 임시거처로 활용하며, 4일간(1950년 6월27일∼7월1일) 제2의 청와대 역할을 한다.

당시 전세가 악화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 곳 공관에서 주한미군 무쵸대사와 기자회견을 열고 UN군 참전을 공식 요청했으며, 1950년 7월 12일 미군에게 일체의 재판권을 부여하는 이른 바 대전협정(주한미군 군대의 형사재판권에 관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협정·SOFA 전신) 체결, 현대사의 한 현장으로 기록된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현직 단체장의 공관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여론과 별개로, 지사공관은 2002년 8월 23일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49호, 관사촌은 지난해 9월 3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101호로 각각 등록되는 운명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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