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이동녕·이범석 선생 생가 훼손 심각
천안지역에는 3.1 아우내 만세운동에 필두에 섰던 유관순 열사와 김구응 선생, 항일민족단체 신간회의 주역으로 참여해 자주독립의 혼을 불어 넣었던 조병옥 박사, 상해임시정부 의장을 지낸 이동녕 선생 등 정부 서훈이 추서된 독립운동가들만도 70여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성역화 사업이 자치단체의 무관심으로 생가가 훼손되는 등 홀대를 받고 있으며 행적이나 사상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조명작업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창호·김구 선생 등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며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목천읍 동리 79-1)의 경우 천안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현 주소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
충남도기념물(제72호)로 지정된 이동녕 생가는 원형이 크게 훼손된데다 참배객을 위한 휴게소는 물론 진입로도 차량 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좁아 사적지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약관 20세의 나이에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대첩를 주도한 철기 이범석 장군의 생가지(목천읍 서리)도 지난 93년까지 후손들이 살아오다 떠난 뒤 생가는 물론 그나마 남아있던 비문과 안내판 조차 자취를 감춘 폐허로 변했다.
이 장군의 생가지를 놓고 일부 향토학자들은 목천읍 교천리로, 마을 사람들은 목천읍 서리로 각각 주장하는 등 논란을 벌이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확한 규명과 복원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호서··지방 최대의 만세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구응 선생은 유관순 열사의 빛에 가려 그 공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 하는 사례.
김 선생은 유관순 열사와 함께 아우내 만세운동의 거사계획을 총 지휘하고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어머니 최정철 여사와 함께 순국한 인물로 지난 89년 뒤늦게 김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숭모회'가 설립돼 추모사업을 전개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
이 밖에 대한독립군 총 단장으로 항일투쟁을 주도했던 최병규 장군(북면)과 일본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결성한 대한광복단의 유창순, 장두환, 성달영, 김정호, 조종철, 류중협, 강석주 선생 등 광복회 7의사에 대한 업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독립유공 관련단체들은 "천안이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추모사업은 유관순 열사 등 극히 일부 선열들에 편중돼 있다"며 "숨겨져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재 조명하고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사업 등이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