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경옥고제조' 정웅래 금산인삼제약사 사장

▲ 아버지 정해도(왼쪽에서 두번째),정웅래 사장(맨 왼쪽) 부자가 1966년 금산 경옥고 공장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68년되는 해였어요. 아버지께서 경옥고 공장 열쇠를 넘겨주셨지요. 그러더니 그해를 넘기지 못하시고 주무시듯 돌아가셨어요. 경옥고 제조기술을 모두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하시곤 홀가분하게 떠나신 것 같아요."

선친인 정해도씨(1968년 작고)가 맺어준 아들 정웅래씨(62·금산인삼제약사 사장)와 경옥고(瓊玉膏)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옥고는 인삼을 비롯해 복령, 꿀, 지황, 구기자, 백문동, 천문동 등 7가지 한약재로 만들어진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정기를 보충해 주고 진기를 고르게 하며 원기를 북돋아 준다.

때문에 허약하거나 중병을 앓은 후 쇠약증, 정신적 육체적 피로, 기억력 감퇴, 성기능 장애, 신경쇠약, 빈혈증, 갱년기, 소화장애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사장의 선친이 처음으로 경옥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48년도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금산에서 인삼 농사를 지으며 살던 정 사장의 선친은 집안에서만 조금씩 만들어 먹던 경옥고를 본격적으로 제품화시키겠다고 착안한데서 지금의 '금산인삼제약사'가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주식회사 형태로 경옥고 공장을 만들고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전통 방식을 더해 경옥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약효를 인정받았던 탓인지 경옥고는 제법 인기가 좋았고, 작지만 알차게 운영됐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선별하고, 다듬는 일부터 시작해서 길게는 108시간을 따뜻한 물을 보충해 주며 중탕으로 약재를 다려야 하는 등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힘겨운 작업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온 정 사장은 선친의 가업을 이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최고 학부인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던 청년 정 사장에게 꿈을 접고, 고향에서 경옥고를 만든다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제 꿈은 신문 기자였습니다. 한 때는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도 했으니까요. 군대를 다녀온 후 어느 날 인가 아버지께서 경옥고 만드는 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전 싫다고 했죠. 서울에서 돈벌고 싶다고요. 나중에는 아버지가 눈물로 호소 하시더군요"

그 길로 정 사장은 금산 경옥고의 견습생이 됐다.

그때가 1966년도 경이다.

"견습시절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가업을 잇는 아들을 아버지는 대견스럽게 여기셨어요. 모든 걸 함께 상의했지요. 저녁마다 같이 앉아 얘기를 나눴죠."

정 사장에 대한 부친의 애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 사장의 부인 박현숙씨는 약사 출신이다. 부친은 "가업을 이으려면 약사 며느리가 있어야 한다"며 손수 발품을 팔아 약사 며느리와 맺어준 것이다.

아들 정 사장이 힘든 가업을 이어 나가는데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될 반려자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부친의 뜻이었다.

선친은 정 사장을 일일히 데리고 다니며 경옥고 만드는 기술에서부터 약재를 고르는 법, 공장을 운영해 나가는 일까지 모든 것을 눈으로, 손으로, 냄새로 맡아 보도록 하며 꼼꼼히 가르쳤다고 한다.

"68년에 아버지께서는 공장 열쇠고리를 넘겨주시면서 이제는 용돈만 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당시 경옥고 만드는 기술도 대부분 익혔고, 공장 운영도 어느 정도 익어 자신감이 붙을 때였어요. 그러더니 그 해 어느 날 저녁 주무시듯 돌아가셨어요."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 시작한지 딱 1년이 되던 해였다.

선친은 정 사장에게 한낱 손재주에 불과할 수 있는 경옥고 빚는 기술만 물려 주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선친은 정 사장에게 '눈에 안 보이는 재산'에 대해 강조하곤 했다.

"아버지는 돈을 벌려고 약을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하셨어요. 제대로 된 재료와 처방으로 만든 경옥고로 사람들이 효과를 보면 자연히 돈을 벌게 된다고 말씀이었죠. 평범하지만 진리죠."

정웅래 사장(사진 오른쪽)과 부인 박현숙씨가 충남 금산군 농공단지 공장에서 경옥고를 포장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전우용 기자
선친의 말씀은 정 사장에게 '삶의 지표'로 남아 있다.

정 사장은 10여년 전 금산 시내에 있던 경옥고 공장을 인근의 하신 농공단지로 옮겼고, 시설도 국제 의약품 제조 기준에 맞췄다.

제대로 된 시설에서 경옥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정 사장의 욕심도 있었지만,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위한 준비다.

정 사장의 아들인 유찬(29)씨가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선친에게서 공장 열쇠를 받았듯, 아들 유찬씨에게 금산 경옥고를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근간이 될 번듯한 공장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찬씨는 현재 서울에서 경옥고와 연관이 없는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일부러 서울 생활을 시키고 있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요. 경옥고 제조 기술이야 1~2년이면 가르치지만, 지금 사람 사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찬씨가 단순한 경옥고 제조 기술자가 아닌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정 사장의 바람에서다.

정 사장은 요즘 바람이 또 하나 생겼다. 정 사장은 "약사 며느리를 얻고 싶어요. 제가 약사를 아내로 얻어 평생을 함께 해 온 것처럼 아들도 약사를 아내로 맞아 경옥고를 더욱 발전시켰으면 합니다"라며 "그렇게 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대를 잇게 되니 다음 번에도 취재를 해 달라"며 수줍은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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