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엄마야' 박경종 지음

'파아란 연꽃잎에 청개구리 앉았다/ 올챙이 꼬마들이 올망졸망 몰려와서/ 엄마야 우리들하고 손잡고 같이 놀자/ 엄마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너희들은 손이 없어 아직은 안돼요.'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박경종(朴京鍾·88) 선생이 미수(米壽)년을 맞아 출간한 '청개구리 엄마야' 중 일부분이다.

70여년의 세월을 오직 아이들을 위해 살아온 박 선생은 이제 그 정열이 식을 때도 된 듯 싶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순백의 깨끗한 동심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박 선생의 아름다운 동시와 동요는 초등학교 3, 4학년 교과서에 실린 '무지개'와 '햇빛 쨍쨍 따슨날'에서부터 6학년 교과서에 실린 '초록바다'까지 각 학년마다 실리지 않는 곳이 없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초록 바다', '푸르다' 등 박 선생이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한 수없이 많은 작품들 속에 이름이 묻혀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박 선생은 "이름이 뭐 그다지 중요한가.
?아이들이 내 노래를 듣고 부르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불과 18살의 나이로 동요 '왜가리'가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 선생의 문인생활은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지금껏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작품을 써 나가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써야지'하며 오직 아동문학만을 고집해 온 박 선생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아동문학만이 그의 인생에 전부는 아니다.

먼저 한국 아동문학상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정동 문학상'이 갖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위기를 맞았을 때 이 어려움을 모두 혼자 끌어안고 지금까지 이끌어 온 사람이 바로 박 선생이라는 것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와 함께 1967년 작사가와 작곡가 등 50여명의 뜻있는 회원들로 구성된 '한국동요 동인회'가 결성될 당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박 선생이라는 것도 아직까지 숨겨져 온 이야기 중 하나다.

박 선생은 이 동인회를 통해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힘을 모아 해마다 3편씩의 동요를 만들게 했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동요집은 산간벽지에서 쉽게 책을 접하기 어려웠던 많은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우리가 한번쯤 봤지만 무심코 바라보며 지나쳤던 많은 문인들의 시비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의 해답도 박 선생이 가지고 있다.

박 선생은 한국의 문학발전을 위해 살다간 수많은 문인들이 그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1966년부터 문인들의 시비와 묘비를 만들어 왔다.

박 선생은 1966년 동화작가 마해송을 시작으로 1967년 강소천, 1977년 한정동, 1978년 주태익 등 동료, 선·후배 문인들의 묘비와 시비가 설립될 수 있도록 앞장서 왔다.

이 밖에 작가 김이석, 임인수, 윤용하, 이종한, 이범선, 이원수, 유여촌 등의 시비와 묘비도 모두 박 선생이 뜻있는 문인들을 모아 설치토록 한 것이다.

아직도 공주원로원의 뒷산으로 유쾌한 산보를 다니며 흥얼흥얼 동심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지내고 있는 박 선생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아이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나는 언제까지나 아이들을 위해 노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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