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한달조사불구 유물 다량출토

▲ 현 군수리사지 모습.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7일 오전 11시 부여 군수리 사지(寺地·절터) 발굴조사를 위한 개토제(開土祭·땅을 파기 전 토신(土神)에게 올리는 제사)를 현장에서 개최한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부여에 위치한 그 시대 절터 중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꼽히는 군수리 사지는 국가 사적 제44호로, 정확히 70년 만에 재발굴에 들어간다.

이곳은 1935년부터 1936년 2차례에 걸쳐 일본인에 의해 지표조사가 이뤄졌는 데, 그 결과 중문지(中門址)·탑지(塔址)·금당지(金堂址)·강당지(講堂址)·회랑지(回廊址) 등 백제식 사찰가람 구조 및 와적기단(瓦積基壇) 구조가 확인됐고, 탑지에서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 및 금동미륵보살입상(보물 제330호)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그러나 당시 발굴조사는 조사 기간이 한달가량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 조사 방식 또한 정식 발굴조사가 아니라 시굴조사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사찰 구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발굴조사의 목적은 사지의 정비와 복원을 위한 학술자료 제공에 있다"며 "조사기간이나 규모, 면적, 토층조사 미실시 등 과거 불충분하게 조사됐던 점 등이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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