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재료 충청·전라서 조달, 백제인들 채소 이용한 반찬 즐겨

1816년에 쓰여진 '농가월령가' 10월조에는 다음과 같이 김장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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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배추 캐어 들어 김장을 하오리다.
?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을 맞게 하소
? 고추·마늘·생강·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 독 곁에 종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 양지에 가가(假家)짓고 짚에싸 깊히 묻고'

1816년 김치의 재료로 무·배추·고추·마늘·생강·파·소금·젓국·장아찌가 쓰이고 있다. 당시 김치용 배추와 무 등은 충청도 공물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기요람'을 통해서 본 각공(各貢)에서 사포서(司圃暑)에 지급되는 공물을 보면 채소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공물에 의존하고 있다.

채소를 식용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될 것이지만, 채소류를 가공·저장하여 본격적으로 김치로 만들어 먹었으리라고 짐작되는 시기는 백제 시대로 판단하고 있으며 김치는 백제 문화의 산물이라는 논문도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점유하고 있었던 백제는 채소가 특별히 많았으며 채소를 이용한 반찬과, 채소가 많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채소의 저장·가공기술 즉 발효식품을 즐겨 먹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관해서는 중국의 사서류(史書類)에서도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는데, 고구려·신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항목인 '백제는 채소·주례(술)·효찬(술안주) 등이 많으면 화식(火食)을 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충청도·전라도는 백제 시대 때부터 이미 채소가 많았던 곳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채소 공물을 전적으로 충청도와 전라도에 의지하고 있었던 조선왕조 후기까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1816년 경에는 오늘날의 김치 형태와 거의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다. 조선왕조에서는 고려의 제도를 이어 요물고(料物庫)를 두었으며 요물고와 같은 침장고(沈藏庫)는 태종 9년(1409)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백제의 김치문화는 고려의 요물고, 조선왕조의 침장고(김장고)로 이어진다.
(사)궁중음식문화협회장, 대전보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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