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대 히트송 음반시장 장악

원로 가수 겸 작곡가 김명환씨가 매주 토요일 '흘러간 노래에 얽힌 사연'을 연재합니다. 우리 뇌리에서 잊혀졌거나 잊혀지고 있는 40∼70년대 인기 절정의 옛 노래에 대한 사연과 가요계 안팎의 뒷얘기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애환을 조명할 것입니다. /편집자

불효자는 웁니다. 이 노래는 제목부터가 우리들에게 가슴 뭉클함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크나큰 뉘우침과 교훈을 주는 깊은 뜻이 담긴 내용의 노래가 바로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자. 사실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으며, 어떻게 자랐으며, 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너도 자식을 낳아 길러 봐라. 그래야만 이 부모의 깊은 심정을 안다"고 했던가. 사실 그렇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당신의 소중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위하여 사랑으로 헌신함을 뒤늦게나마 알 것 같다. 하늘이 아무리 높고 바다가 아무리 넓고 깊다 한들 부모님의 사랑에 비교할 수가 있으랴.

그런 줄 알면서도 부모님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효도하지 못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함을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서두에서 밝힌 노래 가사와 같이 후회하나 보다.

?이 노래는 1940년도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으로 신인가수 진방남이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다. 이 노래가 세상에 발표되자 빠른 속도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처럼 대중매체가 발달한 시대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레코드회사도 레코드 물량이 달려 주문을 받고도 가요팬들에게 제때에 보급하지 못하는 어려움 또한 컸다. 당시로선 우리나라에서는 레코드를 찍지 못하고 일본에 가서 찍어 와야 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불효자는 웁니다' 노래가 히트되자 진방남의 인기는 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 갔다. 진방남의 본명은 박창오이며 1917년 경남도 마산시 시원정(지금의 중성동) 126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사업이 실패하여 가정생활이 아주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진방남은 공부를 계속해야 할 나이에도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방남은 직장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녀 봤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다.

이렇게 애타고 고생하던 어느날 지금의 조선일보사와 당시 태평레코드회사가 공동으로 전국 남녀 가요콩쿠르대회를 경북도 김천에서 연다는 광고를 보고 출연하기로 결심을 했다.? <계속>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에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님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셨소
이국이 우는 자식 나 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엎드러져 한없이 웁니다
김영일 작사/이재호 작곡/진방남 노래

/한국가요작가협회 작사·작곡가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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