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27 錦山, 왜군을 몸으로 막다(1)
왜군, 곡창 호남行 이순신에 막혀
내륙쪽으로 선회… 금산 거점 필수
왜, 웅치 찍고 전주 입구까지 진격
황진·변응정 등 결사항쟁으로 격퇴
변응정 칠백의총 배향·세종에 사당
왜군, 대둔산 계곡쪽으로 방향 틀어
권율장군 등 1500명 이치고개 잠복

?
▲ 금산은 '임진왜란'의 운명을 가를 태풍 같은 존재였다. 사진은 왜군의 호남 진입을 막다가 전사한 해남 현감 변응정이 배향돼 있는 칠백의총의 종용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 칠백의총 순의비. 문화재청 제공
▲ 칠백의총 종용사 봄 풍경. 문화재청 제공
임진왜란 때 호남지방이 유일하게 왜군에 짓밟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천만다행이었다. 곡창지대 호남을 손에 넣어야 군량미 수급에 차질이 없었기 때문에 왜군은 기필코 호남을 점령해야 했는데 바다를 통해 전라도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이순신 장군의 철통같은 방어에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그리하여 선택된 전략이 내륙을 통해 전주를 점령하고 이어 나주를 비롯 전라도 남부까지 장악하는 것. 이런 전략을 실행하려면 금산을 거점으로 삼아야 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1592년 6월 23일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이끄는 1만명의 왜군이 충북 영동, 양산을 거쳐 금산을 점령했다. 금산군수 권종이 필사적으로 왜적과 맞섰으나 본인은 물론 아들까지도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로부터 금산은 '임진왜란'의 운명을 가를 태풍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왜군은 7월 7일 금산을 출발,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 경계에 있는 웅치(雄峙)고개 밑에 진을 쳤다. 그리고 7월 8일 새벽 웅치를 넘어 전주로 공격을 개시했다. 우리 관군과 의병은 죽기 살기로 육박전까지 전개하며 왜군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항전했고 왜군은 어절 수 없이 공격을 멈추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군의 화살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된 왜군은 다시 공격을 해와 마침내 웅치를 탈환하고 전주 입구 안덕원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이때 관군을 이끌고 나타난 동복군수 황진이 결사적으로 왜군을 격퇴시키는데 성공했다(황진은 그후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다 전사). 또한 이 전투에서 해남 현감 변응정(邊應井)이 의병과 관군을 이끌고 싸우다 부상을 입고 전사한 것을 비롯해 웅치의 정상을 지키던 정담, 강운, 박형길 장군이 전사하는 등 많은 병력을 잃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변응정의 전사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기록이 있다.

우암 송시열선생의 '송자대전'(宋子大全) 그리고 임진왜란에 대한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서는 웅치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라수군절도사로 임명된 것도 모르고 전투에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는 왜란 중에 오히려 일본 본토를 역습하여 일본을 혼란 속에 빠뜨리자는 상소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선묘중흥지'에는 변응정은 웅치전투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웅진전투와 이치전투가 있은 며칠 후 벌어진 금산성전투에서 왜군의 야간 기습을 받고 전사했으며 금산 사람들이 사우를 세워 조헌, 고경명과 함께 제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변응정은 왜군의 호남 진입을 막다가 전사했으며 선조는 그의 공적을 기려 병조참판에 추증했고 격이 높은 '충장공'(忠莊公) 시호가 내려졌으며 칠백의총의 종용사에 배향돼 있다. 세종시 전동면 청남리에도 그의 공적비와 사당이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

왜군은 이렇게 웅치를 통해 전주로 진입하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이치(梨치)고개를 넘어 전주를 점령한 뒤 호남지방을 석권하기로 하고 7월 8일 금산을 출발, 진산을 거쳐 지금의 대둔산 도립공원을 통로로 진격을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진산에서 대둔산 험준한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호남을 삼키려는 왜군은 절박했고, 우리 측도 이곳이 뚫리면 호남곡창지대를 잃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막아야 했다.

우리 측 총지휘관 권율 장군은 선봉장 황진 등과 함께 1500명의 병력을 미리 이치고개 곳곳에 잠복시키고 왜군이 계곡을 따라 올라 오기를 기다렸다. 양측의 긴강감이 험준한 대둔산 계곡에 팽배했다. <계속>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