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일 충북대 유비쿼터스 소장

최근 국내 굴지의 PC 업체인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미 몇 달 전에도 중견 PC업체들이 시장으로부터 퇴출된 적이 있어 이 회사의 법정관리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81년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PC를 생산해 왔던 이 회사는 우리나라 벤처기업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며 한때 프로농구단을 운영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다.

그러던 이 업체가 대표이사의 눈물 어린 편지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은 새삼 기술개발과 경쟁력 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PC업계의 부침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PC의 대명사로 일컫던 IBM이 PC사업 부문을 접고 중국의 레노버 그룹에 넘겨주었으며 이보다 앞선 지난 2002년에는 세계 최대의 PC업체 컴팩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HP와 합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가트너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2007년까지 세계 10대 PC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도산할 것이라고 하니 삼보컴퓨터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은 시기의 문제만 남아 있었지 필연적인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PC업계의 부침이 심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PC산업의 회생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가 관련 업계간의 생존경쟁으로 가격파괴 현상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데스크톱 PC는 말할 것도 없고, 근래에 들어와서는 노트북 PC들도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마저도 노트북 생산시설을 이미 중국으로 이전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이들 저가 PC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웬만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현상이 PC산업의 경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성능이 우수한 최신 제품이 그렇지 못한 제품에 비해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IT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산업사회의 법칙을 무너뜨리고 있다.

날이 갈수록 성능이 우수하고 여러 가지 최신 기능으로 무장된 IT제품들의 가격이 예전에 만들어진 낮은 기능과 성능의 제품에 비해 저가로 팔리는 상황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메모리 칩의 가격은 새로운 기술공법으로 제작될수록 용량은 증가하나 가격은 낮아지고 있다.

새로 개발된 PC일수록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낮아지는 현상은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1~2년전만 해도 50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는 100만원대가 훌쩍 넘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성능과 기능이 우수한 동급의 제품이 그 절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대형 벽걸이 TV의 경우에도 가격파괴가 일어나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200만원대로 판매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몇 년 내로 그 가격이 100만원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하니 기술 발전에 따른 가격파괴 현상은 IT산업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기술에 의존해 계속해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려는 업체들이나 기술개발을 등한시하여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들은 더 이상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PC업계의 지각변동을 단순히 외국의 저가 공세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하고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방법을 찾는 데 게으르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IBM과 삼보컴퓨터의 부침은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