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딸, 정지아/필맥

작가 정지아가 남로당의 일원이었던 부모님의 삶을 재구성해 쓴 실화소설이다.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세 권의 장편으로 펴냈던 것을 두 권의 책으로 새롭게 복간했다. 작가가 스물다섯의 나이에 계간 '실천문학'에 발표한 이 작품은 출간 직후 공안당국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분류돼 판금조치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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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작가라 할지라도 쉽게 쓸 수 없는 장편의 역사드라마를 어린 나이에 거침없이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현대사의 핏빛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모진 고초를 겪은 작가 가족의 수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로당 전남도당 인민위원장이었던 아버지와 남부군 정치위원었던 어머니를 둔 탓에 작가는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어린 나이로는 도저희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멍에에 짓눌려 어두운 성장기를 보냈다.

철이 들고 현실과 역사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떠가면서 작가는 순수한 대의를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이루지 못하고, 죽음보다 더한 사회의 냉대 속에 쓸쓸히 늙어가는 노부모를 이해하게 된다. 지아, 남로당 빨치산의 거점인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따온 자신의 이름자에서부터 덧씌워진 천형을 비로소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조선은 해방 후 곧바로 혼란에 휩싸인다. 나라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둘로 쪼개지고, 민중은 식량난에 허덕이며, 전국적으로 총파업이 일어난다. 구례구 철도원으로 일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청년 정운창은 이런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돈 없이도 무상교육이 가능하다는 이북행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비록 학습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몇몇 좌익 지도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 감화된 정운창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에 가입해 새로운 이름 '유혁운'으로 다시 태어난다. 남녀가 똑같이 대우받는 세상에 대한 꿈을 품고 있는 이옥남도 태평양전쟁의 말엽에 강제징용되었다가 돌아온 남편을 따라 남로당에 가입함으로써, '이옥자'라는 가명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열성적인 남로당원을 주축으로 이뤄진 구빨치는 정부의 끈질긴 토벌작전으로 와해 위기에 처하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다시금 활기를 띤다. 1950년 9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이 대거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진 빨치산은 후방 교란작전을 편다. 이에 큰 위협을 느낀 연합군은 전방부대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단행하고, 결국 빨치산은 믿었던 북조선노동당의 배신과 남한 군경 합동의 거센 공격 속에서 허망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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