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봉 충북NGO센터장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성당에 나갔다. 나는 누나들처럼 유아세례를 받았고 세례명은 요한이다. 중학 때는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카톨릭학생회장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카톨릭 교리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현재는 냉담중인 시간이 꽤 흘렀지만 말이다.

요즘 힘든 일을 겪게 되면서 '네 눈에 들보를 보아라'는 구절이 자주 떠오르게 된다. 혹시나 남에게는 혹독하게 하면서 나에게만 관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 허물에는 관대하면서 남의 허물은 보아 넘기기 힘든 것이 아닌가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럴수록 원칙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원칙대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 생각의 틀에 맞춰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구성 하지 말고 상대방이 말하는 그대로만 받아 들여야 한다. 내가 하는 말도 치장을 하지 말고 가진 생각의 날 것을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도를 숨긴 채 하는 말은 상대방을 설득시킬수 없고 자신을 복잡한 술수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문제해결을 할 수 없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장치들은 다 걷어 내야 한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모든 감정을 걷어 낼 수는 없으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디에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회적동물이고 항상 이해관계에 놓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갈등은 없애야할 것이 아니라 조정해야 한다. 닥친 문제에 대한 규명과 분석을 통해 조정하고 합의 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자연스런 과정이라 받아들여야 한다. 갈등이 생기면 논쟁이 따르고 그것을 통해 발전할 수도 있다는 긍정의 자세가 필요하다. 힘겨운 갈등 속에서 하루하루를 더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갈등 조정의 과정에서 새로운 힘을 발견해야 한다.

자아성찰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반성하고 살피는 일이다. 자신의 경험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가진 생각만이 전부라는 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특히 결정을 내려하는 순간에는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회의(懷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회의야 말로 오류를 막을 수는 없지만 오류를 줄여갈 수 있는 방법이다. 자아성찰이 자기합리화 또는 자기책임을 면하는 방식으로 빠지지 않도록 경게해야 한다. 우리 모두 깊은 자아성찰을 통해 위축된 자신감과 자존심을 회복하고 삶에 평화를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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