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머니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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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머니의 봄날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4월 25일 20시 0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4월 26일 금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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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억수 시인

지난 주말 어머니와 대청호 둘레 길을 드라이브했다. 대청호 둘레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선물을 준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부끼는 꽃잎의 춤사위가 아름답다. 화사한 벚꽃 터널 사이로 햇빛이 쏟아진다. 산과 들에 연둣빛 봄이 희망의 날개를 펼친다. 잠시 차를 멈추고 자연의 윤회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아홉 남매의 셋째 딸이다. 어머니는 내 기억에도 없는 지난 봄날을 대청호반에 자맥질하는 햇살로 꺼내놓는다. 어머니는 귀하게 자라셨다. 복이 많다 해 아호가 복만이다. 집안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 집 셋째 딸로 불리기도 했다. 청풍김씨 명문가 셋째 딸은 18살에 결혼해 어려운 신혼을 보냈다. 교장선생님 댁 자재와 결혼한다고 동내에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신랑은 결혼 당시 사범학교 학생이었다. 2년 후 초등 교사로 경상도 발령을 받았다. 신랑은 교사 부임 1년 후 군에 갔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내의 위치와 며느리의 입지가 제대로 갖춰 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집살이를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딸들을 위해 힘든 줄 몰랐단다. 그렇게 어머니는 대청호반에 반짝이는 햇빛보다 더 많은 봄날의 시간을 속울음으로 이겨냈다며 잠시 감정을 추스르신다.

대청호 둘레길의 개나리와 목련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우리 오 남매를 개나리라고 불렀다. 유년에는 어찌하여 우리가 개나리였는지 몰랐다.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이라는 의미를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는 목련을 닮았다. 목련처럼 순백의 고고한 기품을 지녔다. 언제나 당당하고 강직하셨다. 그렇게 반듯하셨던 어머니의 잃어버린 봄날의 무게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동안 어머니는 주저앉을 정도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여유를 가장하였는지 모른다.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걸어온 어머니를 위해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다. 맏이로 지난날들의 부끄러움이 자책으로 다가와 내 마음을 일깨운다. 오로지 자식사랑에 한평생을 바치시고 이제는 장성한 아들 그늘에서 편히 사실 연세다.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어 따로 사시면서 늘 나는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손사래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죄스럽게도 부모님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끝이 없다는 것을 내가 부모가 되어서도 잊고 지낸다. 나를 위해 헌신하시는 어머니 마음을 만 분의 일이라도 생각하고 어머님이 나를 사랑하는 반만큼도 어머님에게 베풀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머니와 함께 달려온 길을 뒤돌아본다. 굽이굽이 지나온 벚꽃 길이 아름답다. 어머니의 지난 세월이 대청호 가로수 벚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둣빛 새싹으로 새록새록 승화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동안 어머니와 함께한 봄날의 아름다움을 몰랐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늘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건만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청호 둘레 길을 드라이브하면서 어머니가 들려준 속마음을 헤아려본다. 지나온 어머니의 굴곡진 삶에 숙연해진다. 어머니가 희망했던 자식들의 꿈들이 개나리 꽃잎에 맺혀있다. 어머니가 잃어버린 젊은 날의 봄이 대청호반에 꽃향기로 피어난다. 이제야 어머니의 봄날이 목련의 고고한 아름다움인 줄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