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

지역학이란 ‘어떤 지역의 지리나 역사, 문화 따위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지역학은 지역의 뿌리를 찾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여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학은 1993년 ‘서울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에 인천학(2002), 부산학(2003) 대구경북학(2005) 등의 지역학이 차례로 개설됐다.

해방 이후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왔다. 더 윤택하고 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앞 세대는 많은 희생을 감당하였다. 지금의 한국은 그간의 노력과 희생의 바탕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성장전략은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과 서울 중심의 자원 분배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이러한 국가 주도 또는 서울 중심적 성장 모델은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가 전체의 부(국부)의 규모는 커졌으나, 지역 간의 균형은 흐트러졌다. 세계 질서는 급변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성장전략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번영의 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좋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갈 창의적인 생각과 능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산업은 제조업을 위주로 한 수출 지향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수출은 우리의 경제를 굳건하게 떠받쳐왔다. 근면 성실한 근로자와 국민의 애국심은 우리의 산업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그러나 4차 산업이 보편화됨에 따라 새로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오늘날에는 주어진 설계나 주문대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형태의 산업으로는 미래를 꿈꾸기 어렵게 되었다. 근면 성실과 애국심에 위에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공동체를 두루 아우르는 정체성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지역학은 각 지역마다 있었던 제 나름의 삶의 형태와 사유의 형식을 발견하여 현대적 가치로 재구성하는 학문적 사업이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돌아보면 우리 선조의 삶에 녹아 있었던, 독립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위대한 유산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정신을 발굴하여 현대에 필요한 의미로 재해석하고 재정립하는 노력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유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지역학은 각 지역이 중심이 되고 지역 간의 차이를 특성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계기를 제공하고, 더욱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간상과 사회상을 재구성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지역 간의 차이는 지역주의를 뛰어넘는 창의적 요소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천적 지역학을 확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충남(충청)의 특징은 개방과 포용이라 할 수 있다. 역사·문화·지리적으로 외부세력과 다양한 교류를 맺고 외부인을 수용하여 화합하는 위대한 정신이 있었다. 백제가 해상교류왕국일 때 문명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기지의 사실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 공동체를 이루는 힘이 우리 지역에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수용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포용력이 우리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재발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후손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충남학과 같은 지역학은 우리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특성을 되살리고, 이것을 토대로 21세기 우리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길러내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역민 모두가 함께 궁리하고 참여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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