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예술에서 지역성은 시간의 깊이를 공유한 역사의 감정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에, 시간의 깊이 속에 현재를 음미한다. 역사의 감정을 느낀다. 예술가는 각자의 감정으로 지역에 반응해, 시간의 깊이를 시각화한다. 예술작품은 과거의 기억이 적층된 현재의 역사다. 감상자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시간의 깊이를 공유한다. 작가, 작품, 감상자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공감미술의 토대가 된다. 공감미술은 시대감정으로서 보편성을 가진다.

숲 안에서 숲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숲 밖에서 숲을 보니 그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관찰한 대전 충남지역의 예술의 지역성은 진지함이다. 원로작가, 중견작가, 청년작가 모두 성의(誠意)와 같은 진지하고 성실한 창작태도를 나타낸다. 극도로 성실한 창작태도를 존중하는 지역의 분위기는 진지한 예술가를 배출한 토대가 됐다.

차세대 작가들에게 다양한 장르에서 극도로 성실한 화법으로 전승돼 대전 충남화풍은 ‘노동집약적’이라고 평가되기에 이른다. 수행하듯이 예술에 임한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마음이 평정하니, 집중할 수 있다.

극도로 성실한 집중력을 보이는 지역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대전과 충남의 도통(道統) 정신이다. 예술로 도를 면면히 전한다는 예술철학이다. 이곳은 조선 500년간 한국 유학정신의 핵심지역으로서, 예술을 도통의 매체로 이해할 만큼 진지하게 예술을 바라본 지역이다.

바로 이곳의 지역성은 시간의 깊이 속에서 축적된 진지함이다. 시간의 깊이를 축적시키는 예술의 현재를 알고 싶다면, ‘넥스트코드 2019’에 선정된 예술가의 작품을 보시기를 추천한다. 매년 다양한 연고로 대전과 충남에 뿌리를 둔 차세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도예가 이윤희 작가는 대전에서 작업한다. 하나씩 세밀하게 빚어낸 도자로 만들어낸 차안과 피안 사이의 연옥을 시각화 한다. 도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섬세함이다. 화려한 도자에 담겨진 사람의 모습은 과연 화려한 세상에서 사람의 유한함을 미묘한 감정으로 직관하게 한다.

현재의 미묘한 갈등과 현존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회화작가로서 극도의 진지함과 성실성에 기반한 회화가 강하다. 하나의 붓질마다 집중해 담겨져 있는 작품의 진지함은 색채를 넘어선 강렬한 정신성으로 느껴진다.

진지함이라는 공통점으로 가지고도 장재민 작가는 회색빛으로 풍경을 수렴한다. 이재석 작가는 군대의 트라우마가 유럽중세회화의 구도와 화려한 색채라는 기묘한 공존의 이원구조로 긴장감을 시각화한다.

박용화 작가는 동물에 내면을 투사하면서, 우리의 삶이 이대로 좋은가를 차분히 묻는다.

대전에서 미디어아트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노상희 작가가 미세먼지의 데이터를 모아서 디지털 맵핑으로 바꾸어 낸다. 그의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은 예술가가 인류 공통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으로 김재연은 0그램의 드로잉으로 씨앗을 사진의 주인공으로 해 소소한 생명을 소중함을 전한다.

박승만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을 각종 유품으로 그려낸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우리는 바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뎌낸 조부모들의 헌신으로 이뤄진 결과다.

진지함은 깨달음으로 가는 열쇠다. 예술에서 지역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예술가들이 과거의 기억을 응축하고, 생생한 현재를 반영하며,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문화정체성을 유전시킨다. 매체의 다름을 넘어서서 공통으로 보여주는 진지함이 바로 대전 충남의 지역성이자, 가장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지역성을 확고하게 보여주는 예술가들의 파급력은 한국의 현재를 전 세계에 발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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