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장

R&D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연구자의 근무 제도와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이에 대응하고자 중장기적 관점에서 역할과 책임(R&R)에 대해 고민해왔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작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연구원 중 부설기관을 제외하고는 가장 작은 편이다. 그러나 할 일의 영역은 매우 넓다. 과학적 진단부터 치료기술의 발전과 한약의 안전성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학 영역이 연구 범위에 들어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미래의학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

인공지능 한의사를 위한 데이터 플랫폼 구축부터 추진 중이다. 오는 7월부터는 주 40시간(최대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해 정규직 전환 이후 계약직 채용은 이제 당분간 불가능하다. 매우 제한된 자원으로 기관 R&R에 포함된 일들을 모두 잘 해내야 한다. 방법은 효율적 운영밖에 없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한의학연구원은 지난해부터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준비를 해왔다.

하나는 연구자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환경이다. 이를 위해 먼저 3개로 나뉜 연구부마다 팀장과 2명의 팀원으로 구성된 PO실을 두었다. PO실은 연구업무 수행 시 발생하는 행정업무를 전담한다.

2명의 팀원은 연구부서에서 1명, 지원부서에서 1명을 파견하도록 했다. PO실의 존재는 연구부서와 지원부서 양쪽의 업무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후 연구행정업무의 종류에 따라 연구자 본인, PO실, 지원부서 중 어디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냐에 따라 업무를 나눴다.

지원부서는 연구자의 행정업무 자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절차들을 간소화했다. 연구자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도록 부장간, 팀장간 소통을 원활히 했다. 중요한 문제는 매주 부원장이 주재하는 연구부서 보직자회의에 지원부서 간부가 들어가서 설명하고 토의했다. 매주 월요일엔 원장이 일선 연구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주로 민원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지원부서 팀장이 여기 배석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관련 부서와 논의하고 피드백을 줬다.

다른 하나는 많은 연구팀에서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묶어 특정임무조직을 신설한 것이다. 이 팀에서는 부서를 뛰어넘어 어떤 연구팀이든지 요청해오면 원내 최고의 전문가가 그 일을 대신 해준다.

임무조직은 크게 3개로 구성했다. 첫 번째는 지능화추진팀이다. 이 팀은 연구원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연구데이터를 모아서 관리해준다. 필요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필요하면 데이터 구조를 설계해주기도 한다. 모아진 데이터는 연구책임자의 동의를 얻어 공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임상연구협력팀이다. 주로 연구팀의 요청에 따라 임상연구를 기획해준다. 연구 대상이 의약품이든 의료기기든, 연구 목적이 허가용이든 연구용이든 설계해낼 역량을 갖춘 인재들로 구성돼있다. 임상시험계획 설계부터 통계 디자인, 임상연구 데이터의 관리 및 분석, 임상연구 품질 보증 및 관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다.

세 번째는 비임상연구협력팀으로 실험실 연구를 지원한다. 연구에 사용되는 한약 시료의 품질관리·공급·분리분석 업무를 해준다. 또 목표 질환 효능평가를 위한 모델 디자인 및 효능평가 협업도 수행한다. 효능분석업무나 동물실험인력을 팀마다 꼭 보유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운영시스템을 통해 일반 조직의 연구자는 전체적인 연구의 설계와 실험 결과의 해석 등 보다 지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협력팀의 연구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 기술력을 보다 심화시킬 수 있다.

연구자 개인의 발전은 다시 기관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민간 영역에서는 유사한 운영시스템이 일부 활용되고 있지만, 정부출연연구기관 중에는 첫 시도가 아닐까 한다.

작은 연구원의 새로운 도전이지만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면 향후 효율적인 출연연 운영 모델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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