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 보은교육지원청 장학사

피반령은 청주에서 회인을 지나 보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해발 360m의 고개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다. 고개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서 고개 마루에 새겨진 한자를 살펴보면, 더욱 알 수 없는 고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특이한 지명에 그럴싸한 전설이나 옛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인 오리 이원익 대감이 경주목사로 부임해 갈 때, 하인들 장난에 자신은 걸어가며 하인들은 기어서 재를 넘도록 하여 손발에서 피가 났다고 피발령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덤으로 회인 지나 수리티 부근에서는 아예 수레를 만들어 넘어갔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져 온다. 이는 아무래도 청백리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심에서 나온 이야기로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배우리 지음·1994)’라는 책을 읽다보면 절로 무릎을 치며 동의하게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다. 어느 땅이름이나 유래는 가장 먼저 땅의 위치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전라도의 장작골, 절골, 모래내, 모래재, 도장골, 도원리, 싸리재, 박달산, 용머리, 북골 등등 비슷한 지명이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적으로 마을과 골짜기마다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자는 전국을 직접 답사하며 마을 이름과 지형과 지명을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을 썼다. 그래서인지 더욱 믿음이 간다. 아무래도 골짜기, 산, 내, 벌판의 위치에 따라 지명을 짓다보니 비슷한 지형에 비슷한 지명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피반령도 땅의 위치를 근거로 우리말의 음 변화와 한자 의미까지 분석해본다면, 어느 정도 정확한 지명의 유래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회인현 편에 '피반대령은 회인 북쪽 15리에 있는 고개로 고갯길이 아홉 번 꺾이어 가장 높고 위험한 곳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를 근거로 '피' 음의 뿌리를 찾아가 보자. 순 우리말의 지명이 한자로 바뀌어 정착될 때, 험한 '비탈'의 뜻이 '벼', '피' 등으로 옮아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별실이 화곡(禾谷)으로, 빗재(비탈고개)가 핏재(稷峙)로 정착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피발령의 '피'는 '가장 높고 위험한' 벼랑의 의미가 '피'로 음이 변하여 한자로 정착했을 확률이 높다. '피(皮)' 한자는 음을 따라 단순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명이 한자로 정착될 때 단순하게 발음만 좇아 의미 관계없이 정착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 어디에서 왔을까. 이 또한 지형을 근거로 알아본다면 '아홉 번 꺾이어' 이 부분에서 왔을 것이다. 한자 '반(盤)'에는 꾸불꾸불하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고갯길에 꾸불꾸불 뻗은 모양이 국수사리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사릿골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한자로는 반곡동(盤谷洞)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반'은 '피'와는 반대로 한자의 의미를 살려 정착되었을 확률이 높다. 정리해서 피반령을 한자 이전 옛 이름 식으로 부른다면 '별사릿티' '빗사릿골티' '핏사릿재' 등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아무래도 정확한 피반령 유래를 알아내려면, 피반령 주변을 답사하며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마을의 옛 이름에 대해 조사하고, 옛 문헌을 자세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올 봄에도 피반령 고개 마루에는 걸어서 넘어 다니던 고단한 사람들이 심었을 오래된 살구나무에 꽃이 환하게 필 것이다. 고개를 힘들게 걸어서 넘나들며 삶을 이어가고 견뎌냈을 민초들의 애환을 보며 자랐을 살구나무가, 남쪽 바다에서 보은 지나 수리티 넘어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을 피우며 환한 봄을 맞이할 것이다. 환한 꽃비 날리는 피반령을 생각하면 따뜻한 4월 어느 봄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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