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문화카페] '바다의 침묵' 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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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문화카페] '바다의 침묵' 을 다시 읽는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3월 14일 16시 4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15일 금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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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화 '바다의 침묵 ' (1949)
1970년대 대학 외국어문학과 강의는 대체로 텍스트 해석 위주로 진행되었다. 지금처럼 번역서나 관련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어서 원문의 우리말 해석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던 것이다. 담당교수들은 많은 경우 한 줄 읽고 한 줄 해석하면서 약간의 주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강의하였다. 그것도 한 학기 16주강의 가운데 약 1/3 이상은 이런저런 사유로 휴강하거나 당시 시국과 관련하여 잦은 반정부 시위로 휴교령이 발동되어 아예 강의 자체가 없었던 황량한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작품의 문학성이나 작가의 메시지, 문체나 구성상의 수월성 같은 문학연구 차원으로는 진입하지 못한 채 대체로 단순 번역으로 외국문학 텍스트 공부를 하곤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공부한 작품이 프랑스 레지스탕스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바다의 침묵'(베르코르 지음)이었다. 레지스탕스는 대체로 항거, 저항의 의미로 쓰이지만 R자를 대문자로 쓰면 나치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맞섰던 프랑스인들의 항독 무력저항 운동을 지칭한다. 베르코르는 소설을 써본 일이 없던 화가였다. 조국이 독일에 점령당하자 전쟁과 침탈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끝없는 침묵으로 여기에 맞서는 또 다른 항거의 의미를 일깨웠다. 그런 와중에서 적군 장교가 토로하는 휴머니즘을 부각시켜 스스로의 자존을 높이며 종국의 승리를 암시하는 높은 문학적 장치로 저항문학의 금자탑으로 꼽히고 있다.

목청 높이 독립과 자유의 가치와 당위성을 외치고 분연히 무력항쟁으로 침략자에 맞서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숭고하겠지만 '바다의 침묵'에서는 노인과 조카딸이 능력 밖인 행동을 통한 저항 대신에 자신들의 집에 무단 거처를 잡은 독일군 장교의 끝없는 장광설을 통하여 전쟁과 침략의 야만성, 예술의 소통과 숭고함, 휴머니즘의 가치 등을 토로하게 함으로써 침략의 자가당착을 드러내 보여준다.

오랜만에 '바다의 침묵'를 다시 읽으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해에 문학과 예술을 통한 저항의 가치를 찬찬히 되새긴다. 그리고 침묵이 던지는 깊은 항거와 경멸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