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한국전쟁은 분단의 역사를 남긴 잊지 못할 뼈아픈 과거다.

당시 치열하고 수많은 전투가 한반도 곳곳에서 치러졌으며,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작전과 전투 중 대전에서 진행된 ‘한국은행 금괴 수송 작전’이 있다.

1950년 7월 6일 정일권 육군 준장은 32세의 나이에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육해공군 총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최연소 총참모총장이 된 그는 당시 임시 정부청사인 대전 충남도청 회의실에서 취임식을 했다.

7월 7일 UN은 UN군사령관에 미군 사령관을 자동 임명하는 결의를 했고, 맥아더 장군이 UN사령관에 임명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4일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의 지휘를 귀하에게 위임한다'는 공한을 맥아더 UN군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치열한 전쟁 중이던 그 때 미군의 믿었던 천안전선도 무너지고 북한군의 압박이 거세지자, 정부는 7월 16일 충남도청에 있던 모든 부처의 업무를 중단하고 대구로 피난할 것을 지시했다.

상황이 워낙 긴박하다보니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다.

서울에 있던 한국은행은 정부가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보유하던 현금과 금괴를 모두 한국은행 대전지점 지하실에 보관했다고 한다.

청주, 광주, 대구에 있던 현금도 모두 대전으로 옮겨와 대전지점은 현금과 금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나 북한군이 밀고 내려오는 급박한 상황에 군은 철수하고, 대전은 텅 비었던 것이다.

문제는 현금과 금괴를 대구로 안전하게 옮기는 것인데, 당시 한국은행에 있던 직원은 지점장을 포함해 고작 4명이었다고.

직원들은 대전역을 통제하고 있는 미군 장교를 찾아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화물칸 하나를 얻는데 성공했다.

당시 직원들은 서대전 인근에 위치했던 한국은행 대전지점에 보관한 현금과 금괴를 화물칸에 옮기는 작전을 시작했다. 직원 하나는 대전지점을 지키고, 하나는 옮기고, 또 하나는 옮겨온 화물칸을 지키고… 그렇게 고생하며 현금을 옮기고 나니 이번에는 대구에 갈 기관차가 없었다.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북한군의 남침은 이미 금강에 까지 압박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군의 협력으로 대구로 떠나는 기관차에 현금과 금괴가 담긴 화물칸을 연결시키는데 성공했고, 대전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것이 7월 20일. 이 현금 수송차가 출발하고서 바로 대전은 미24사단 딘장군이 직접 지휘하는 시가전을 전개했다. 대평리 방면에서 금강전선을 돌파한 북한군과 신탄진 방면에서 우회해 진입한 북한군에 대항하는 딘장군의 공격은 처절했다.

결국 딘장군도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불타는 대전을 빠져 남으로 후퇴하다 포로로 잡히는 비극을 맞게 된다. 정말 위기의 순간, 한국은행 현금과 금괴를 적에게 넘기기 않고 대구로 안전하게 수송한 그때의 한국은행 직원들은 영웅이었다.

<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중>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