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억수 시인

연초록 햇살이 찬바람에 몸살을 앓는 3월이다. 망막박리 수술로 한 달여 엎드려 생활했다.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 몸무게가 늘어나니 혈압 수치도 높아졌다. 수염이 더부룩한 거울 속 사내를 한참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다. 건강한 체질이라 생각하며 몸을 혹사했다. 그동안 건강에 자만했다.

아내가 체중 조절을 위해 우암산을 걷자며 앞장선다. 우암산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지만 어떤 등산로를 택하든 길게 잡아 한두 시간 내외 코스다.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은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이 매섭다. 수술 전에는 우암산을 그냥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능선을 따라 걷는 걸음이 자꾸만 뒤처진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체력이 점점 약해진다.

망막박리가 특별한 통증 없이 발생했다. 전조증상이 있었으나 소홀했다. 몇 달 전 눈앞에 검은 점이 어른거렸다. 가끔 커튼을 친 듯 시야가 어둠침침했다. 문학을 하다 보니 눈에 피로가 누적돼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밤늦도록 글을 읽고 쓰며 자만했다.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오른쪽 눈 반절이 깜깜했다. 당황해 가까운 안과에 갔다. 다른 병원을 추천하며 빨리 가란다. 소견서를 들고 타 병원에 갔다. 의사는 위험한 상태라며 바로 응급 수술을 진행했다.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에 이미지가 남는 것처럼 눈으로부터 들어온 영상을 이미지로 담는 곳이다. 수술을 마치고 한 달여 회복 기간 중에 또다시 망막이 떨어졌다. 수술이 잘못됐나 했더니 반대쪽이 떨어졌단다. 담담하게 수술에 임했다. 담당 의사는 2번이나 수술하면서도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 환자는 처음이란다. 나는 웃으면서 선생님의 의술을 믿으며 왼쪽 눈은 정상이라 했다.

우암산은 청주시민의 삶의 안식처다. 도심에서 자연을 벗할 수 있어 좋다. 찬바람에 가지를 신명 나게 흔들어 대는 나무는 그냥 우암산이 좋아 웃는다. 우암산 소로의 여린 새싹도 덩달아 미소 짓는다. 우암산의 나무들은 봄을 기다리며 싹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찬바람의 장난에 불평 않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망막박리 수술은 당일 고통보다 수술 후 시력을 회복하는 노력의 고통이 더 크다. 2주간 24시간을 엎드려 지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나는 두 번의 수술로 인해 4주를 엎드려 지냈다. 6개월여 동안 소화불량과 팔꿈치 통증에 시달렸다. 수술한 눈의 안대를 풀고 시력을 측정하니 다행히도 0.6이다. 그러나 사물이 찌그러져 보인다. 실명을 면하였으니 감사하다. 앞으로 정기적 검사를 해야 한다. 무거운 것을 들지 말고 뛰거나 머리를 흔드는 격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장시간 운전, 컴퓨터, 스마트폰, 글쓰기, 읽기를 될 수 있으면 자제해야 한다. 아파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고 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그 보임이 다르듯이 계절의 느낌 또한 그런 것 같다.

매서운 바람이 코끝에 매달린다. 바람이 한겨울 흉내를 내며 성깔을 부린다. 우암산은 떠나는 겨울의 마지막 앙탈을 느긋하게 받아주는 여유를 보인다. 이제 남은 인생 아내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갈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어머니 마음으로 팔 벌리는 우암산의 건강한 봄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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