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3·1운동 100주년이다.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어본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해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해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순하고 빛나는 민족문화를 맺게 할 것 이로다.”

이렇게 지키고자 한 우리문화는 무엇인가? 우리문화가 무엇인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를 알아야, 나를 존중할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존중해야 다른 사람이 귀한 줄 안다. 나를 모르면, 부정적인 감정이 막연한 비하감과 불안과 초초와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을 엄습한다. 나를 비하하면 다른 사람마저도 함부로 대한다. 나를 알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거울을 본다. 동그란 얼굴, 가는 눈, 높지 않은 코, 영락없는 한국사람의 얼굴이다. 성격을 살펴본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빨리빨리하는 순발력이 좋고, 정이 많아서 모질지 못하며, 정의감에 대의를 따른다. 영락없는 한국사람의 성격이다. 말하고 글을 써 본다. 주어, 목적어, 동사 순서로 말하며, 순한글과 한자어 단어가 섞여있다. 소리나는 대로 쓰는 한글로 글을 쓴다. 한국사람끼리 억양은 조금 다르더라도 한국어가 잘 통한다. 영락없는 한국어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 나는 누구인가를 미술로 물어야 한다.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해 ‘한국화’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바로 2019년은 한국화의 100년 역사와 흐름을 되물어야 할 시기이다. 한국화는 한국사람이 그린 그림이다. 한국화는 변화를 관통해 한국의 정신과 미감을 반영한다. 한국화는 그림 재료가 무엇이어도 포용한다.

나는 누구인가? 외국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한때 한국미술계는 해외의 정보가 제한적이던 시절에 유럽이나 미국의 이론을 수입하고, 발표된 미술 형식의 차용하는 것만으로도 선진적이고 아방가르드하다고 평가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인터넷과 헤시테그로 실시간으로 외국정보가 공유된다. 단지 외국에서 본 미술형식에 영향을 받아, 원본을 추종하고, 응용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차용의 테두리 안으로 가두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형식을 만들어서, 외국까지 풍미할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듯이, 한국화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해, 새로운 한국화를 창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화가 K-POP처럼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미술의 형식과 내용의 원본이 되는 흐름을 만들어 낼 정도의 담대함이 요구된다.

나는 누구인가? 대전과 충남은 한국미술사의 기라성과 같은 작가들을 배출한 곳이다. 청전 이상범, 고암 이응로 뿐만 아니라 대전 충남은 한국화의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대가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대전이 문화불모지라는 인식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 본다. 대전 충남은 한국화의 강한 전통이 있으나, 본격적인 전시와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서, 문화 자존감의 인지가 약할 뿐이다.

이제 한국화 쓰기를 시작해, 한국미술사를 조망하면서 지역미술을 큰 흐름 속에서 평가하는 전시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바로 내가 만들어 간다. 이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존중하며, 나를 사랑하고자 한다. 나의 정체성이 한국의 문화정체성이다. 나를 알고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할 것이다. 바로 나를 알고, 너를 알 때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다. 나를 기반으로 한 공감문화이야 말로 평화로운 공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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