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지난 2018년 우리나라는 이미 65세 이상의 노인층의 인구비율이 이미 14%를 넘어서는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또 2016년에는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기는 장수국가가 됐다. 실제로 진료실에서도 수술적 치료를 고민하는 80, 90대의 노인 환자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다.

노인과 관련한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현안들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가히 '노인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인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항상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노인과 관련한 이런 현상들을 대부분의 경우에는 '노인문제'라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부정적인 어감의 말이다. 노인과 관련한 사회적 예산을 낭비적 비용이라 치부하며 억울해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노인이 많아지면서 노인 이외의 인구가 손해를 보는 것 같기도 한다. 많아지는 노년층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인류가 이렇게 장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리 멀지 않은 일이다. 60세 환갑잔치를 큰 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우리의 기억에 분명히 남아있다. 물론 수명의 연장은 그냥 얻어진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였으며, 이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다.

생활수준의 향상, 의학의 발전의 결과였고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최소한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말이다. 이제 평균수명이 100세가 된다는 시대도 조만간 실현 가능을 것이라는 주장도 큰 힘을 얻고 있다.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이며, 그 끝이 어디까지 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장수라는 것은 축복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니 최소한 우리가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노인 인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낮은 출산율과 어린아이의 낮은 인구 비중이 대비되어 이야기 된다. 이 양극단에 있는 인구군에 대한 의학적 견해는 사뭇 흥미롭다. 정반대일 것 같은 두 부류에게 생리적인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미성숙과 노쇠로 오는 의학적 약함이 사뭇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어린이와 노인을 차별할 수는 없다고 한다.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나이라는 잣대로 우선순위나 위중도를 왜곡하여 차별하는 것은 비문명이요, 야만이다.

솔직하게 우리나라 노년은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노년 그 차체도 서러운데 죄인이 된 것 같다. 그것도 요즘 같은 전대미문의 풍요의 시대에서 말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산다는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핵심은 장수하는 노인층의 증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최저 수준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이 더 큰 문제다. 누구에게나 건강과 생명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앞서는 중요한 가치다. 사람의 수명이 얼마가 적당하고, 얼마까지 가능한가 라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혼란스럽기는 하다. 우리는 이러한 장수의 시대를 한 번도 겪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당분간 우리의 수명은 또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노인이 된다. 서글픈 노인이 된다.

생명은 새것과 헌것이라고 해서 차별 받지 않는다. 그저 존중 받을 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인류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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