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 족보인 ‘선원록’.
김·이·박(金·李·朴) 세 성씨가 우리나라 인구의 45%정도가 된다는 통계를 봤다. 그리고 본관이 상위 5위 안에 드는 김해 김, 밀양 박, 전주 이, 경주 김 그리고 경주 이씨를 합하면 1300만 명 정도 된다니 우리나라 성씨문화의 독특한 현상이라 할만하다. 본관 순위 20위까지가 모두 각기 40만 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베트남에서는 응우옌(Nguyen) 단일 성씨가 40%에 이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중국은 상위 세 성씨 이, 왕, 장 (李, 王, 張)씨를 통틀어도 20% 남짓이라니 대비된다.

외국에 비하여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성씨가 집중되는 가운데 항렬(行列)에 따른 작명이 주류를 이루어 이름 역시 선택의 폭이 좁았다. 대체로 수, 목, 화 ,토, 금의 오행에 바탕을 둔 항렬자, 한자로 1·2·3·4가 들어간 글자를 쓰거나 중국의 나라 이름을 돌림자로 사용하는 등 집안마다 독특한 항렬 기준이 있어 이를 따르다 보면 결국 글자 하나만 개인 선택이 가능하여 같은 이름이 중복되는 등 이런저런 혼선을 빚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각기 집안의 전통과 자긍심으로 작명상의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도 사실이다.

세대가 바뀌고 의식이 변화된 이즈음 젊은 가장, 신세대 할아버지들은 항렬자 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하나 또는 둘에 그친 자녀에게 돌림자를 쓴다는 것도 마뜩치 않아 보이는지 부르기 좋고 새로운 감각으로 신선해 보이는 이름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최근 많이 쓰이는 이름 목록은 이런 현상을 반증한다. 여자의 경우 서연-서윤-서현-지우-민서-하은 순으로 '서'자에 대한 취향이 두드러지고 남자는 민준-서준-예준-도윤-주원-시우 등으로 '준'자를 많이 쓰는 경향이다. 오래전 교과서안의 단골 이름이었던 '철수-영희' 콤비를 이제 '민준-서연'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그 뒤를 이어 지후-준서-지호-하준-현우-준우(남자), 하윤-윤서-지민-채원-지유-지윤(여자) 순이라고 한다. 감성문화 사회 트랜드와 취향을 명료하게 반영하는 징표의 하나로 선호되는 이름의 이미지를 꼽는다면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이름들이 그려갈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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