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 대전문화원연합회 회장

기해년(己亥年)의 춘풍은 혼돈과 극한 대립의 사생결단에서 보듬고 화합하며 상생하는 나라로 가라는 자연의 명령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권을 찾아 온지 70여년이 지난 지금, 경제도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문화, 예술, 체육 등도 세계적인 수준인데 딱 하나 정치만은 원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시기다. 어느 일본인 학자가 말하기를 한국은 주권국가가 될 수 없는 나라라고 한 몇 가지 예 중에서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첫 번째로 꼽았다.

일본정치를 답습한 우리정치는 국익이 걸려있는 국제적 문제에는 여야가 똘똘 뭉치는 일본정치권과 달리 패거리 정치로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 학자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 드릴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형태를 보면 이전투구와 아전인수, 내로남불, 적과 적만 있고 국민은 없는 정치권의 형태는 패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적패청산이라는 미명아래 반대파를 숙청하는 작업으로 비쳐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함몰된 정치권의 시각은 다수의 국민생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기득권 정치세력 뒤에 숨어서 나는 깨 끝 하다고 외쳐대는 관계와 재계 그리고 학계 문화 체육계, 거기에 부하 뇌동하는 일부국민과 학생 그리고 노동계 까지도 내 탓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전 정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비겁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으로써 도리가 아닐 것이다.

말없이 그저 잘 되기만 바라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안중(眼中)에도 없는 것인지? 왜 언론은 부채질까지 하며 국민들의 판단을 호도하고 있는지? 작금(昨今)의 보도태도는 중립성을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상파나 종편방송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말쟁이들을 모아서 자극적인 단어로 국민과 국가를 병들어 비틀거리게 하고 있다. 자극적인 말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다음엔 더욱 큰 자극적인 언어로 나팔을 불어야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우리 국민은 이런 진통을 격고나면 좀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내편 네 편 가르지 말고 힘을 합하여 상식이 통하는 나라,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 질서가 바로 잡힌 자유민주의 나라로 함께 나아가야 우리 후손들에게 직무유기가 안 될 것이다.

새싹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방금 출산한 신상아 같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고고의 울림의 신비한 느낌이다. 새싹, 바로 그것은 시작인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과 같이 우리의 다반사는 시작에 큰 의미를 두며, 그것은 시작을 잘하고 못하는 것이 결과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출발은 새싹과 같이 작고 여림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 작고 여림(새싹)의 시작에서 완숙에 이르기까지 세상과 만나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거친 세파를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면, 당당하게 하나의 숙성된 생명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 기간을 거치면서 끝까지 완주하는 새싹은 바른 생명체의 기본을 성실하게 지키며 따뜻한 햇볕과 훈훈한 바람이 함께한 자양분을 고루 섭취해서 건강한 성년이 된다.

우리는 흔히 버릇없고 본분을 잘 지키지 않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싹수가 노랗다고 한다. 그 말은 새싹이 파란하게 자라야 하는데 노란색으로 변해 벼렸다는 이야기다. 영양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교육역시 부실하기 때문에 새싹으로의 가치를 상실해 1년 농사(정치농사)를 실패 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만큼 건강한 새싹의 의미가 큰 것이다. 고로 우리 후손들이 자유민주국가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을 만들어 줘야하는 책무 또한 이 시대를 함께 하는 우리들이 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겨울이 가면 어김없이 봄은 다시 돌아온다, 이번 봄은 새로 쓰는 포용의 정치가 새싹의 발아를 위해 따뜻한 온기를 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심신이 건강하고 튼튼한 새싹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도 가슴으로 보듬고 사랑을 가득 담아주어야 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정겨운 사회 환경을 만들어 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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