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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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대로
  • 충청투데이
  • 승인 2018년 12월 26일 18시 42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2월 27일 목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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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성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12월이 속절없이 바쁘다. 이 맘 때쯤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했으나 무사했던 것을 감사하고, 내년에는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한결같다. 무사히 보낸다는 것은 옛 어른들 말씀처럼 ‘그냥 편하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순리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무리가 없는 순조로운 이치나 도리이다. 이치(理致)는 사물의 정당하고 당연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이며 도리(道理)는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정당하고 마땅하며 당연한 것이 ‘순리(順理)’이다.

‘순리’라는 말이 생각보다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올해 들어 순리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안전사고로 사망한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에 필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것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한 청년의 비보였다. 뉴스에서 그의 마지막 동선을 담은 영상을 시청하면서 마음이 내내 아려왔다. 헤드 랜턴도 없이 작은 손전등 하나로 벨트를 점검하던 그 새벽에 꿈 많던 청년은 컨베이어 벨트 밑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굳이 부모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이 뉴스를 접했던 모든 사람들이 같이 느끼는 참담함 그 자체였으리라.

그런가하면 지난 3월에는 부산 엘시티 공사장에서 외부 작업용 구조물이 200m 아래로 추락해 4명이 숨졌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에는 예산 인근의 대전-당진 고속도로 교량 보수에 나섰던 작업자 4명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앵커볼트 하나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태안, 부산, 예산에서 발생한 사고는 모두가 일터의 순리에서 벗어나 생긴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마땅히 그 새벽 태안에선 2인 1조였어야 했고, 부산과 예산에선 당연히 그 작은 볼트 하나만 꽉 조여져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언제까지 작업현장의 순리 일탈로 인해 노동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 지난 1월 정부는 자살, 교통사고, 산재사고 3대 분야에서 향후 5년간 사망자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보고했다. 사회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들을 최소화하고 안전망을 구축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목표인 것이다.

자살이나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는 사람의 문제로부터 크게 기인한다면 산재사고는 시스템의 오작동 원인이 크기 때문에 예방과 대책은 훨씬 간단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설명하면서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먹고 자고 생식하는 생리적 욕구이며, 그 다음 단계로 인간은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됐을 때 가장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발현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자아실현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전한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 기본 욕구이다. 이제 원청과 하청, 관리감독기관의 책임 떠넘기기를 반복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하며 이 시스템 안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는 모든 구성원은 너나할 것 없이 매순간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당하고 마땅하며 당연한 작업 시스템을 만들고 순리대로 주어진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 그것만이 정도(正道)이며 가장 탄탄한 길일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산업현장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시스템이 받쳐주는 순리대로(順理大路)의 한해가 되길 바란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고 빠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