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칼럼] 용서와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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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칼럼] 용서와 화해
  • 충청투데이
  • 승인 2018년 12월 23일 17시 42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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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
얼마 전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의 항소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의 선고가 내려진 뒤 피해자의 아버지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는 전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왜 재판부가 용서해줘요. 말이 안 되죠.” 피해당사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는데, 가해자가 저지른 범행을 법원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면죄부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토대로 설립된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해 재단법인 출범 2년 4개월 만에 공식적인 해산 절차에 들어갔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할머니들이 입은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돈으로 위로하려고 하였지만, 피해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용서는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하는 것이어야 하며, 누군가가 대리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 의한 강제징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은 최근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新日鐵住金株式會社)이 일제 강점기의 징용공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판시했다. 미츠비시(三菱)중공업의 강제징용과 근로 정신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도 반발하고 있지만, 일본 언론도 대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대법원의 결론은 1965년 한·일 양국이 체결한 청구권협정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일간의 역사문제를 두고 일본의 진보와 보수 언론이 일치된 의견을 내어놓고 있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한·일간의 청구권협정은 징용된 당사자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국가 간의 합의로 매듭지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청구권 협상으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종결지으려고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용서는 가해자가 피해 당사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에 벌어졌던 국가권력에 의해 행해진 인권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며칠 전 1979년 부산·마산민주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 포고령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처벌 내용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월 29일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모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였지만 김 모씨는 지난 5월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이번 법원의 판결은 ‘늦어버린 정의’가 되고 말았다.

피해자는 피해를 입는 순간부터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피해자가 고통의 늪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처벌을 받는 것보다 용서를 받는 것이 속죄를 위해 앞서야 하는 일이다. 국가나 사회단체는 피해자들이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도록 먼저 가해자에게 사죄를 요청하여야 한다. 피해자의 아픔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고서는 용서와 화해의 단계에 이르기는 어렵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어야 용서와 화해는 실현될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