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팔월 말이었지만 더위는 물러갈 생각이 없어보였고, 에어컨이 돌아가는 교실에 앉아 있어도 몸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능까지 남은 기간은 두 달 반 정도. 강기찬은 고3의 한여름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자기주도학습 시간이었다. 졸음이 몰려온 기찬이는 자기주도학습실을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세수를 할 생각이었다.

“오! 늘 기가 충만한 기찬, 기찬! 뭐 하심?”

기찬이가 세수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등 뒤에 옆반 두유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원래 이름은 김민석인데 두유를 입에 달고 살아서 친구들이 이름 대신 두유라고 불렀다.

“졸려서 잠 좀 깨려고.”

기찬이가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말했다.

“야! 근데 오늘 석식은 뭐냐?”

“석식? 글쎄. 메뉴가 달라지면 뭐하냐? 그저 맛없는 급식일 뿐인데.”

두유 물음에 기찬이가 대답을 했고, 둘은 일관성 있게 맛없는 급식에 대해 한탄을 했다. 그러다 두유가 석식시간에 학교 앞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사먹자고 제안을 했다.

“이봐, 두유 군! 난 무단외출은 안 된다네. 작년에 무단외출 했다가 걸려서 혹시 걸리게 되면 4주간 장기퇴사를 당한다네.”

기찬이가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숙학교였다. 근거리에 사는 아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전국에서 온 아이들로 학교와 집이 멀었다. 기찬이 집도 학교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대중교통으로 1시간 10여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무단외출을 해서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까봐 외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병원 진료, 부모님과의 외식 등이 아니면 외출 허가를 해주지 않았고, 무단외출 했다 걸리면 단기퇴사, 장기퇴사, 학기퇴사, 학년퇴사, 영구퇴사 등의 조치를 내렸다. 기찬이의 경우 작년에 무단외출했다 걸린 적이 있었고, 그때 2주 단기퇴사 처분을 받았다. 그때는 그나마 2학년이라서 집에서 통학하는 게 덜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일 분, 일 분이 아까운 고3이었다.

“소심하시기는… 우리 말고도 무단외출 하는 애들 많잖아. 그리고 샘들도 인류애가 있다면 설마 고3을 퇴사시키겠어?”

두유 말을 들은 기찬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석식 시간에 보자며 교실로 돌아갔다. 석식 시간에 무단외출을 감행한 둘은 교문을 벗어난지 10여 분 만에 편의점 앞에서 기숙사 사감과 마주쳤고,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기찬이는 4주 장기퇴사, 두유는 2주 단기퇴사 처분을 받았다.

인권위는 기숙사의 단체생활 유지를 위해서는 규율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규율을 어기게 되면, 그것을 제재하는 선도 조치를 통해 규율을 지키게끔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찬이에게 내려진 4주 장기퇴사는 과했다. 다른 방식으로 선도할 수 있음에도 일률적으로 기간을 정해 퇴사토록 한 것은 지나친 조치인 것이다.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구체적인 행태나 그 정도에 따라 조치도 달라야 한다. 단기퇴사를 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학부모를 호출하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도 선도가 가능하다. 
아울러 인권위는 기숙사 퇴사로 인해 해당 학생이 갖게 될 부담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거리가 먼 곳에 집이 있는데 기숙사 퇴사를 당할 경우 통학에 어려움이 있어서다. 때문에 선도 조치를 할 경우에는 그러한 환경도 고려하는 게 맞다. 
따라서 학교가 기찬이의 무단외출에 대해 과도하게 선도조치를 한 것은 헌법이 보호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행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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