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스물넷,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로 7년여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이직도 했지만, 길게 쉬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잠시 기자직을 내려놓는다. 곧 '엄마’가 되기 때문이다. 5년간의 연애 끝 29살에 결혼했다. 30살엔 임신을 했다. 예정대로면, 31살이 되자마자 엄마가 된다. 모든 게 처음이다. 그래서 얼떨떨하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땐, 한 웹툰 속 말이 떠올랐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 내 사유지에 집을 지었다." 그랬다. 처음엔 놀라움뿐이었다.

☞모든 건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우선 '금주'가 있었다. 나는 애주가다. 꿀꿀한 날엔, 소주가 생각이 났다. 비 오는 날엔, 막걸리가 떠올랐다. 색이 비슷한 아침햇살로 달래봤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무알코올 맥주는 있으면서, 무알코올 소주·막걸리는 왜 없는지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이렇게 긴 금주기는 처음이었다. 술 마시는 남편이 부러웠다. 그래서 둘째를 가진다면, 같이 금주해야 한다고 엄포도 놓았다. 입덧 지옥도 겪었다. 맨날 먹고, 토했다. 약을 못쓰는 것도 고통이었다. 문에 손을 찧어도, 심한 감기가 걸려도 그냥 참았다. 음식도 그랬다. 커피는 무카페인만 마셨고, 녹차도 못 마셨다. 탄산음료도 안 마셨다. 회도 조심해서 먹었다. 민물고기는 쳐다도 안 봤다. 뭔가를 먹을 땐, 괜찮은지 검색하는 버릇도 생겼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배·허리·다리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숨도 찼다.

☞모든 건 '돈'이기도 했다. 출산정책이 멀었음을 몸소 느꼈다.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바우처(임신 행복카드)가 있었지만, 부족했다. 50만 원 한도는 임신 7개월에 끝났다. 병원비·검사비·접종비 모든 게 돈이었다. 보건소에서 가능한 것은 보건소에서 받았다. 그래서 바우처를 7개월까지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출산준비물도 어마어마했다. 1년 먼저 출산한 아가씨 도움을 많이 받았다. 거의 물려받고, 선물 받았다. 그럼에도, 살 건 많았다. 쪼그마한 아기용품이 왜 이리 비싼지 두 번 놀랐다. 천도 적게 들고, 얼마 쓰지도 않는데 말이다. '임산부'·'신생아'자만 붙으면 값이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일이다. 자연스레 부모가 된다는 건 축복이다.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곧 출산 고통과 육아전쟁이 찾아온다. 그때 되면,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회사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의 이 설렘을 기억하고 싶다. 처음이라 서툴지만, 그래서 더 기대된다. 몇 달 뒤, 금주 끝 첫 건배사는 이렇게 하고 싶다. "이 땅의 모든 위대한 엄마·아빠에게 치얼스~" 편집부 김윤주 기자 maybe041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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