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교 대전시 문화체육관광국장

보문산 넘어 무수동, 정생동을 거쳐 ‘단재로'를 따라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 이르게 되면 단재 신채호 생가가 있다. 지금도 여기를 가려면 꼬불꼬불 길을 돌아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는 느낌인데, 도로가 제대로 없던 당시는 오죽 멀었을까. 그런 곳에 소년 신채호가 태어나 충북 청원군 낭성면 고드미 마을로 이사할 때까지 약 8년 동안, 어렵게 소년기를 보냈다고 전한다.

단재 생가가 대전 외곽 후미진 곳에 위치하다보니, 단재를 대전의 인물로 인식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 물론 단재가 한국근대사에 있어 언론인, 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단재 신채호, 고균 김옥균이 대전 사람이었다고 하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가오는 12월 8일은 단재가 태어난 지 꼭 138주년이 되는 날이다. 금년도 어김없이 단재 생가에서 탄신기념행사가 열린다. 이 날만은 단재 생가를 돌아보면서, 평생 민족사랑을 통한 독립운동에 헌신한 단재의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어남동 한쪽 구석에 외롭게 있던 단재의 민족정신을 시민 대중 한가운데로 끌어내야 한다.

1992년부터 대전시는 단재 생가 주변 매입 및 생가 복원, 기념 동상 건립, 단재홍보관 개관, 기념공원 경관조성 등 일련의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여기에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단재의 일생과 민족정신을 시민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이 본격화 된다.

우선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단재 동상을 원도심 한가운데 세우고, 초라한 단재홍보관 증개축 등 기본계획 수립용역에 착수한다. 또한 단재의 삶과 독립운동을 다시 조명해보는 다큐멘터리 제작, 세미나도 추진한다.

일부에서 인근 충북지역의 단재 기념사업에 비해 늦었을 뿐만 아니라, 차별화 전략으로 특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한 문제 제기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조선독립을 위해 일제와 평생 투쟁한 민족정신이야말로 지역을 초월해 존중되어 마땅하다.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단재는 평생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로 세수를 했고, 죽기 직전 병보석 허가를 친일파 보증인에게 의지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오로지 민족독립을 위한 숭고했던 단재 신채호선생의 열망과 희생은 존경받고 계승되어, 대전사람의 자부심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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